BOOK2011/06/16 13:20


수년 전 글이기 때문에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는데,
이 글을 보게 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을테니 꽤 알려졌을것 같은데
나는 불과 몇달 전에야  아고라에서 우연히 이글을 접하고 이제서야 본것에 한탄하기도, 이제라도 본것에 행복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일본인과 독도에 대해 논쟁하게 된 어떤 사람이 그 내용을 쭉 올려놓은 아고라 글에,
"독도문제 이 만큼만 알면 모든 논리에 대응할 수 있다"는 답글로 붙어 있던 글이다.
원글에서, 논쟁이 진행될수록 한국인 글쓴이가 일본인의 냉정한 논리에 밀리는 느낌이 드는게 너무나 안타까웠는데, 그 한국인은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독도와 관련된 역사적 지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논쟁이 이어질수록  냉정을 잃고 흥분해가면서 감정적인 대응이 될 수밖에 없었고, 반대로 '자기 나름의 논리'를 갖춘 상대 일본인은 끝까지 침착한 채 일관된 자기 논리를 펼치던 모습에 참 가슴이 답답해져 어쩔줄을 모르겠더라고.

그런데, 웬만한 보통 사람이면 그 정도라도 했을까, 우린 독도가 우리땅이라고 '당.연.히" 알고 있는것일 뿐 그 논리적 근거는 얼마나 갖추고 있을까.
싸울때 진정 승리하려면, 속에선 불이 올라오고 주먹이 불끈 솟아도 겉으론 온화한 표정으로 애써 냉정을 유지한채 극존칭을 쓰면서,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짚어 이론으로 묵사발을 내주는 길." 그것이 최고 아니겠는가.

아래 글은, 정말 그 어떤 추리소설보다 흥미진진하고 전율케 하며, 때론 눈물이 울컥 솟을만치 감동적이고, 동시에 부끄러워 숨고싶게 한다.
홍승목 대사님 답변의 10%라도, 아니 대담 상대자인 프랑스인 학자만큼의 "질문" 조차도  나는 할 수 있을까.

내 블로그를 통해서라도, 소수의 사람들과라도 나누고 싶어, 좀 보기 수월하게 정리했다.
독도는 진짜 당.연.히. 우리땅인것이다.


아래 내용은 7년 전(1996.6.14) 당시 필자가 외무부의 國際法規課 직원으로 근무하던 중, 외국인 Mr Thierry Mormanne (프랑스)의 방문을 받아 가진 2시간 여의 대담을 기록으로 옮긴 것이다.
방문 외국인은 자신이 프랑스에서 국제법을 전공하였으며(박사학위 소지), 현재 ‘프랑스 國立極東學院(Ecole Francaise d'Extreme-Orient) 東京支部’의 researcher로서 ‘일본의 동북아 영토문제’를 연구하는 중이라고 소개하였다.

필자도 당시에 개인 차원에서 ‘독도문제를 이해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을 겨냥한 글(영문)을 쓰던 중이어서 기본 facts나 관련자료를 대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담은 빠른 속도로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당초 “사전통보도 없이 우연히 이루어진 ‘사적’인 대담”이라 여겨 이를 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더욱이, 담당하고 있던 ‘유엔해양법재판소 판사 선거’(고려대 박춘호 교수님 입후보) 캠페인 등으로 몹시 분주하여 ‘사소한’ 일에 큰 시간을 할애할 겨를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1-2주일이 지나면서 마음이 바뀌어 아무래도 기록으로 옮겨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개인적으로 1년 후면 외무부를 떠나 국제기구(UNESCO)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된 상황에서, “후배들에게 선배로서의 의견을 들려 줄 기회가 달리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점도 감안되었다.

빠른 속도로 2시간이 넘게 진행된 대담인 데다, 현장에서는 간단한 memo조차 남기지 않았다. 따라서, 이를 기록으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세부적으로 빠진 부분이 약간 있을 것이며, 또 설명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다른 topic으로 넘어간 부분에서는 추가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verbatim에 가깝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던 지난 6년 동안 사실상 이 글을 잊고 있었는데, 금년에 귀국하여 “지금이라도 발표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고를 받았다. 원고를 다시 꺼내어 먼지를 털고 읽으면서, 이를 공개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대담에 나오는 방문자의 질문이 일본 측이나 또는 제3자가 제기할 수도 있는 문제를 매우 잘 반영한 것으로 보이므로, 독도문제를 연구하는 분들을 위해 자료로 남겨두는 것이 도리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대담에 나오는 필자의 답변은 개인적인 생각을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 예고도 없이 맞은 방문이었으므로 동료들과의 최소한의 사전협의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즉, 필자의 답변은 외교통상부의 입장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Mormanne : 일본에서 독도 영유권분쟁을 연구 중이다. 일본 측의 자료는 충분히 연구하여 그 입장을 잘 알고 있으나, 한국 측의 시각은 일본의 자료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입장을 직접 듣고 싶어서 왔다. 학자들과도 대화를 나누었지만, 당신을 만나보라는 권고를 받았는데 시간을 내 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가능하면 영문으로 정리된 자료를 구하고 싶다.

홍승목 : 구하는 영문 자료는 없다. “독도문제는 일본의 주장에 대꾸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외국인을 위한 홍보자료는 만들지 않은 것 같다.

Mormanne : 한국의 학자가 영문으로 쓴 논문도 구하기 어렵던데…

홍승목 :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 1996년 대담 당시의 상황을 말한 것임.)

Mormanne : 이해할 수 없다. 아무런 할 말이 없다는 뜻인가? 한국의 입장을 구두로라도 설명해 줄 수 있는가?

홍승목 :  1965년 한?일 기본협정 체결 회담 이래 지난 30여 년 간 한국 측의 입장은 “국제법적으로, 역사적으로 너무나 당연히 한국의 영토이므로 사소한 트집에 대꾸하지 않는다”는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의문이 나는 사항에 대해 ‘개인적’ 시각으로 답해 줄 수는 있다.


[재판으로 가기를 거부하는 이유]


Mormanne : 일본은 독도분쟁을 재판으로 해결하자고 하는데 비해, 한국은 이를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분쟁을 국제재판에 의해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일본의 입장을 한국은 왜 거부하나? 단적으로 한국이 법적으로는 자신이 없다는 증거가 아닌가?

홍승목 :  “일본은 재판에 의한 해결을 희망하는데 한국은 이를 반대한다”는 인식은 상당히 왜곡된 것이다. 일본 정부의 홍보를 듣는 기분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이하 ‘ICJ’)에 가자고 했고 한국은 이를 거부했을 뿐이다. 즉, ICJ라는 특정의 법정에 가는데 대해 이견이 있었을 뿐이다.

Mormanne : 한국은 ICJ에 가는 것을 거부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뜻인가?

홍승목 :  물론이다. 아마도 ICJ에 가더라도 한국이 이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두 가지 특별한 이유로 ICJ에 가야만 자신에게 약간이나마 승산이 있다고 보아 ICJ를 고집하는 것이고, 한국은 굳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면서 ICJ에 갈 이유는 없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우선 일본은 “ICJ에 의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면서 중국과의 ‘釣魚島(Tiaoyutai) 분쟁’, 즉 일본인들이 말하는 ‘Senkaku Islands(尖閣列島) 분쟁’은 ICJ에 가야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Mormanne : 실효적으로 일본이 점유하고 있으니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홍승목 :  자기네가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재판에 갈 수 없고, 상대방이 실효적 점유를 하는 경우에만 재판에 가자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비슷한 문제를 두고 일관성이 없는 것이 좀 수상(fishy)하지 않은가?

Mormanne : 일관성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도 있다고 본다. 상대방이 점유 중인 독도 문제는 ICJ에 가져가지 못하면서,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Senkaku Islands(尖閣列島) 문제만 ICJ에 가져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으니 ICJ에 가지 않으려는 점에서 한국도 일본과 비슷하다고 보는데…

홍승목 : 참으로 순진한(naive) 생각이다. 그렇다면 소위 러시아와의 ‘북방 영토’ 문제에서는 러시아가 해당 섬들을 점유하고 있으므로 일본은 적극적으로 ICJ에 가자고 해야 할 텐데, 오히려 러시아가 적극적이고 일본은 러시아의 제의를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

Mormanne : 사실이다. 무슨 이유라고 보는가?

홍승목 :  간단하다. 일본은 ICJ에 판사가 있는데 한국은 없으니, 한?일간 문제는 ICJ에 가는 것이 명백히 자기에게 advantage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ICJ에 각각 판사를 두고 있으니 일본이 ICJ에서 아무런 advantage를 기대할 수 없고, advantage가 없이는 ICJ에 못 가겠다는 것이다. “ICJ에 가면 불공평하니까 못 가겠다”는 한국과, “advantage가 없이 공평한 조건으로는 ICJ에 못 가겠다”는 일본이 어떻게 같이 취급될 수 있는가?

Mormanne : 흥미 있는 point 이다. 일본이 ICJ를 고집하는 이유가 두 가지라고 했는데 나머지 한 가지는?

홍승목 :  ICJ의 보수적 성격상 ‘구시대의 악법’이라고 할지라도 명백히 무효화되지 않은 이상 그 타당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법(lege lata)’을 엄격하게 적용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독도편입 조치는 제국주의?식민주의의 일환이며, 이는 당초부터(ab initio) 무효??라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다. 그런데 일본은 “독도를 영토로 편입한 조치는 식민주의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내심으로는 보수적인 ICJ가 적어도 1905년 일본의 독도편입 당시에는 식민주의에 의한 조치도 합법이라고 판단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ICJ가 “식민주의는 법적으로 무효??라는 확인을 받기 위해 독도를 stake로 내 걸 생각은 없다.


[중재재판 가능성]


Momanne : 중재재판(arbitration)에 부탁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보는가?

홍승목 :  일본정부가 공식 제의해 온 적이 없으므로 한국 측도 그동안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사실은 “일본이 제의해 올 가능성이 없으므로 검토할 필요도 없었다”고 얘기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Mormanne : 그렇게 단정하는 근거는?

홍승목 :  30년쯤 전에 한국의 李漢基 교수가 ‘한국의 영토’라는 논문을 통해 학자 자격으로 “독도문제를 중재재판에 회부하자”고 제의한 적이 있으나, 일본 측에서는 정부든 학자든 이에 대해 일체 반응이 없었다. ‘응하지 못하는’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李漢基 교수는 독도문제에 관해 한국의 대표적 국제법 학자로서 정부에 자문을 해 왔으며, ‘한국의 영토’는 독도에 관한 한국 측의 대표적인 논문의 하나로서 일본의 학자나 정부에 의해 철저히 검토되었을 것이다. 단언하건데, 일본 측이 몰라서 대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Mormanne : 李漢基 교수의 논문은 나도 보았다. 한글을 해독하지 못해 漢字로 된 부분만 읽느라 내용을 숙지할 수는 없었다. 상황이 바뀌어 나중에라도 일본정부가 중재재판을 하자고 제의해 오면?

홍승목 : 검토할 만하다고 보는 것이 개인적인 시각이다. 다만 “식민주의에 입각한 영토편입 조치는 법적으로 무효”라는데 대해 먼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 부분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한,일 양국이 독도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Mormanne : 조그만 섬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兩國간에 독도문제가 돌출되면 일본의 언론은 비교적 냉정을 유지하는데 한국의 언론과 국민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홍승목 :  일본의 언론이나 국민이 냉정할 수 있었던 것은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자기네 정부의 주장이 무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네들이 말하는 소위 ‘북방 도서’와 관련하여 유사한 상황이 벌어져도 일본의 언론이나 국민이 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오히려 러시아 국민이 냉정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 때 “러시아 국민은 mature 한데 일본국민은 왜 이렇게 nervous 하냐”고 물어 볼 것인가? 일본이 3개 영토문제중 독도 문제에 한해서만 재판(ICJ)에 가자고 요구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당초부터 일본의 영토가 아니니까 패소해도 잃을 것은 없고 어쩌다가 이기면 순이익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한국을 식민 지배했으니 자료입증 측면에서도 월등 유리한 입장이고…

그러나 소위 ‘북방영토’나 ‘尖閣列島(Senkaku Islands)’ 문제에서는 패소하면 낭패라고 생각하여 감히 재판의 위험부담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독도문제에 관한 한, 일본으로서는 일종의 ‘부담없는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이 스스로 주장하듯이 진정으로 ‘분쟁의 평화적 해결’ 정신을 존중한다면 먼저 ‘북방 영토’ 문제나 ‘Senkaku 열도’ 문제를 ICJ에 가져가는 것을 보고 싶다. 일본이야말로 ICJ에 가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이유도 없는데…

Mormanne : 일본은 그렇다고 치고, 그래도 한국의 언론이나 국민이 그렇게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제3자로서 이해하기 어렵다. 솔직히 “자신이 없으니까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외부의 시각이 있는데…

홍승목 :  독도문제를 단순한 영토분쟁으로 인식하면 그런 의아심을 가질 수도 있다고 본다. 하나의 조그마한 무인도의 영유권 문제이니까… 실제로 일본국민 입장에서는 조그만 무인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비교적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고… 그러나 한국국민에게는 독도가 ‘주권과 독립의 상징’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20세기 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 때 제1단계로 1905년에 독도를 빼앗고, 그 5년 후에 제2단계로 나머지 全국토를 빼앗아 식민지화를 완성하였다.
일본이 “다께시마(竹島)는 일본영토” 云云하는 것이 한국국민에게는 “너희는 아직 완전히 독립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우리의 식민지이다. 제2단계에서 식민지로 된 땅이 해방된 것은 인정하지만 이에 앞서 식민지가 된 독도를 언제 해방시켜 주었느냐. 아직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모욕을 받고 냉정해질 수 있겠는가? 독일이 지금 와서 프랑스더러 “빠리가 나찌 독일의 점령에서 해방된 것은 인정해 주겠지만, 알자스?로렌은 돌려받아야 하겠어. 빠리가 점령되기 전에 이미 독일이 점령한 것이잖아!” 한다면 프랑스 국민이 점잖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재판으로 해결하는 게 좋겠어!” 라고 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


[대일(對日) 평화조약에서의 한국영토]


Mormanne : 태평양전쟁 후 1951년에 체결된 대일평화조약에서는 ‘제주도?거문도?울릉도’를 한국의 영토에 포함되는 것으로 명시하면서 ‘독도’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홍승목 :  조약의 당사국이 아닌 한국더러 설명하라는 것은 이상하다. ‘조약의 해석’ 문제라면, 한국영토의 외곽에 있는 ‘주요 섬’이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한국영토의 외측 한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뜻으로 하는 질문이라면 간단히 반박할 수 있다. 이들 중 어느 섬도 한국영토의 가장 외곽에 위치하는 것은 없다. 제주도를 예로 들면 더 남쪽에 마라도가 있다.그런데 일본에 대한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본 영토의 외측 한계’가 아니라 ‘한국 영토의 외측 한계’를 결정했을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우습다. 패전국은 일본이 아닌가? 대일평화조약에서는 한국영토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부분을 언급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일본의 독도편입 주장의 부당성]


Mormanne : 한국은 일본의 ‘1905년 영토편입조치’가 무효라고 주장하지만, 독도가 1905년 이전에 이미 한국의 영토라는 근거는 충분한가?

홍승목 :  한 가지 물어보자. 일본의 주장대로 독도가 1905년까지는 無主地(terra nullius)였을 가능성이 정말 있다고 보는가?

Mormanne :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홍승목 :  참으로 식민주의적인 발상이다. 20세기에 와서 태평양의 외떨어진 곳에서 ‘새로 발견된 땅(terra incognito)’이라면 몰라도 한?일 두 隣近國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이미 數 世紀 前부터 한?일 양국 국민이 그 섬의 존재를 잘 알면서 그 부근에서 어업을 해 왔다면 두 나라 중 한 나라의 영토라고 보는 것이 상식 아닐까? 1905년에 정말 無主地(terra nullius)였다면 ‘영국’이든 ‘러시아’든, 아니면 ‘쿠바’든 ‘이디오피아’든 아무 나라나 먼저 독도를 자기 영토로 편입할 수 있었다는 논리인데… 타당한가? 만약에 이러한 나라가 20세기에 독도를 ‘無主地(terra nullius)’라고 선언하면서 ‘영토편입’ 조치를 했으면 과연 일본이 이를 인정하였을까?

Mormanne : 인정하기 어려웠겠다.

홍승목 :  두 나라 입장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일본의 입장은 “1905년에 독도는 ‘임자없는 땅(terra nullius)’이었으므로 어느 나라든 先占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한국의 입장은 “1905년에 이미 인근국가인 한?일 양국 가운데 한 나라가 영유권을 확보하였을 것이므로, 양국 중에서 과연 어느 나라의 영토였는지를 확인해 보면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본의 입장은 서구의 식민주의 개념에 따른 것이고, 한국은 식민주의를 거부하는 입장이다.
독도의 지리적 위치와 규모를 감안할 때, 독도에 관한 기록이 한국이나 일본의 영토에 속하는 다른 유사한 섬에 대한 기록의 수준에 이르면 일단 독도는 terra nullius 는 아니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의 경우 영토에 속한 섬은 별도의 이름을 가진 것만 해도 수백 개에 이른다. 그런데 독도는 조그마한 무인도로서 그 자체의 경제적 가치는 거의 없는데도 영유권을 입증할 역사적 기록은 다른 유사한 섬에 비해 비교적 풍부하다. 이것만으로도 terra nullius 의 논리는 당연히 배제되어야 한다. 1905년을 기준하여 일본이 한국보다 더 강하게 영유권을 주장할 근거가 있는지를 한?일 양국의 자료를 종합 검토하여 판정하면 되는 것이다.

Mormanne : 1905년 일본의 영토편입 조치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뜻인가?

홍승목 :  아니다. 중요한 역사적 사실인데 “전혀 없었던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식민주의에 입각한 영토편입 조치에 대해 ‘법적 효과’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독도를 ‘無主地’라고 선언하여 “그 때까지는 자기네 영토가 아니었던” 점을 명백히 한 것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므로 없었던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Mormanne : “일본에게 유리한 것은 인정할 수 없고 한국에게 유리한 것만 인정해야 한다”는 뜻인가?

홍승목 :  이상한 질문이다. 간단한 비유를 들겠다. 협박이나 사기로 남의 집을 뺏은 경우에 법적으로 소유권 취득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여 당초부터 범죄행위도 없었던 것으로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범죄행위의 동기도 있을 것이고... 요컨데, “불법행위에 대해 법적 효과를 부여하지 않아야 하지만, 불법행위 자체나 그 동기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Mormanne : 결국 한국의 입장은 “독도는 1905년에 이미 일본이나 한국 중에서 한 나라의 영토라고 보아야 하는데, 일본은 terra nullius 라고 하여 자기네 영토가 아니라고 인정했으니까, ‘반사적으로’ 한국영토라야 한다”는 것인가? 1905년에 이미 한국영토였음을 한국이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것 아닌가?


[독도가 1905년에 한국영토였다는 증거]


홍승목 :  물론 한국영토였다는 증거는 충분히 있다. 다만, 한국이 수락하는 입증책임의 정도는 식민주의의 피해를 받은 국가들이 일반적으로 자기영토에 대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지, 선진국들이 식민주의를 합리화하기에 유리한 ‘엄격한’ 입증책임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지적해 둔다.
우선 1905년에 한국 정부가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는지의 법적 인식(animus)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명쾌한 증거가 있다. 1905년에 일본이 비밀스럽게 영토편입 조치를 한 후에도 한국정부는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같은 해에 한국 정부의 외교권을 탈취한 후 다음 해인 1906년에 일본관리 일행을 울릉도에 파견하여 군수에게 “독도는 이제 일본영토가 되었기에 독도를 둘러보러 왔다”고 통보하였다. 이에 울릉군수는 깜짝 놀라 중앙정부에게 “本 鬱陵郡 所屬인” 獨島에 대해 일본인 관리일행이 통보해 온 내용을 보고하고 내용을 조사토록 건의하였다.
“이제부터는 일본 영토”라는 일본 관리의 통보와 “본 울릉군 소속인 독도”라는 한국 관리의 보고가 당시의 양국 정부의 영유의식을 너무나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는가?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이 걸작이다. “보고서의 원본이 없으므로 믿을 수 없다”라고 한다. 울릉군수의 보고서는 같은 해의 신문이나 다른 문서에서 인용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엄격하게 원본 여부만을 가지고 따지면 日本歷史인들 남아날까? 더구나 1910-1945년 간 한국을 식민지배하면서 역사 기록의 管理權도 몽땅 손아귀에 쥐고 있던 일본이 한국에 대해 역사 기록의 원본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니 가관 아닌가?
1906년에 한국의 어느 역사가는 “독도는 전에 울릉도 소속이었는데 일본이 이를 빼앗아 갔다”고 기록을 남겼고, 이보다 몇 년 앞서 1900년에는 정부가 취한 조치로서 “독도를 울릉군수의 관할로 한다”는 내용이 공포된 기록이 있다. 더 이상 무슨 의문이 있겠는가.

Mormanne : 1900년의 정부조치에 대해 일본정부는 뭐라고 하나?

홍승목 :  “거론된 섬은 독도가 아니라 다른 어느 섬”이라는 것이다. 기록에서 ‘獨島’라고 하지 않고 ‘石島’라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기록에 ‘독도’란 이름은 앞서 언급한 1906년 울릉군수의 보고서에 처음 나타나는데 이에 앞서 1900년에 ‘독도’라는 명칭이 어떻게 등장하나? 울릉도 사람들은 독도를 rock island 라는 의미인 ‘독섬’(즉, 돌섬)이라고 불렀는데, 이를 당시의 관례에 따라 한자로 표기할 때 ‘의미’를 따르면 ‘석도’가 되고 ‘발음’을 따르면 ‘독도’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이러한 표기법은 일본에서는 아직도 통용된다.
더우기 현실적으로 ‘독도’말고는 ‘석도’에 해당하는 섬이 없다. 일본이 ‘석도’는 ‘독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도대체 어느 섬을 가리키는지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 아닌가? 일본은 한국의 역사 기록에 독도에 관한 기록이 나오면 “하여튼 독도는 아니다”라고 미리 단정한 후 울릉도 주변에 환상의 섬을 많이 만든다. “밤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천체로서 그 크기는 태양과 같다”는 역사 기록이 있으면 달(moon)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그런데 일본의 입장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면 “무조건 달은 아니다”라고 단정한 후, “그 천체에 해당하는 다른 별을 있거나, 아니면 허위기록이다. 어느 쪽이든 나한테는 마찬가지이니 나한테는 입증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긴 역사로 본 독도의 영유권]


Mormanne : 1905년 이전의 역사기록으로서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임을 입증할 만한 것은 어떤 것이 있나? 방금 “1906년 이전의 역사기록에 ‘독도’라는 이름은 쓰이지 않았다”고 했는데… 물론 한국은 ‘우산도?삼봉도?가지도’ 등이 독도라고 주장하지만 일본은 이를 부인하고 있지 않은가?

홍승목 : “역사기록상 ‘우산도’나 ‘삼봉도’ 등은 울릉도를 가리킨다”는 일본의 주장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울릉도만을 가리킨다고 단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울릉도 주변에 관한 기록이면서도 울릉도가 아닌 별개의 섬을 가리키는 것이 명백할 때는 일단 독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상정하여 기록을 검토해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울릉도 부근에서 역사기록에 상응하는 다른 섬을 찾을 수 없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은 ‘우산도’와 ‘삼봉도’가 ‘울릉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 기록을 근거로 하여 이들은 모두 울릉도라고 단정한 후, 울릉도와는 ‘별개의 섬’인 것이 분명하면 이를 허위기록으로 몰아 붙인다. “자기네 역사책에 환상적(fantastic)인 허구가 많아서 남의 역사까지 의심하는구나”하고 이해를 해 주려고 노력은 하지만, 허위 역사도 필요할 때 만드는 것 아닌가? 건국신화 이야기가 나오는 곳도 아닌데, 그것도 15세기 또는 그 이후의 역사기록에서 “먼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섬” 이야기가 나오면 “거기에 섬이 있으니까 기록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당시 한국사람들이 獨島 부근에만 가면 갑자기 눈이 멀어져 섬을 못 보다가 茫茫大海에서는 느닷없이 환상의 섬을 본 것으로 추측해야 하나? 그 섬이 진정 ‘독도’일 수 없으면 일본의 ‘오끼시마(隱枝島)’를 가리키고, 따라서 오끼시마가 한국의 영토라는 증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독도를 제외하면 가장 가까운 섬이니까…
‘于山島’는 우산국이라는 역사적인 나라이름에서 나온 것이고, ‘三峰島’는 독도의 외형이 3개의 봉우리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추측된다. 또 ‘가지도’는 가지(물개, seal)가 사는 섬이라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독도에 물개가 많이 산 사실은 일본의 19세기 기록에도 나타난다. 독도가 아닌 다른 섬에서 물개가 많이 발견되었다는 기록을 보지 못했다. 해류 때문에 독도가 아니고서는 물개가 몰려갈 만한 섬이 없다. 따라서 독도가 이러한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울릉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때가 있다. 독도의 이름에 대해 혼란이 있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우산,무릉 1도설]


Mormanne : 그렇지만 한국이 자주 원용하는 世宗實錄의 기록상 ‘于山島’와 ‘武陵島’는 모두 울릉도를 가리킨다는 일본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보지 않나? 실제로 세종실록의 기록에서도 “一說에는 于山島와 武陵島가 하나의 섬이라고 한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고…

홍승목 : 설사 ‘2島說’과 ‘1島說’이 공존하였다고 해도 울릉도와 독도의 관계를 볼 때 이는 자연스런 것으로 본다. 독도는 울릉도에 비해 크기가 1/400에 불과하고 절대적 크기도 0.2㎢ 미만인 무인도이다. 또 역사기록상 그 존재는 독자적이지 못하고 항상 울릉도에 종속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울릉도에서의 거리는 약 50해리, 일반적으로 보아 이웃 섬의 한 부분으로만 보기에는 상당한 거리다.
이러한 섬을 울릉도와는 별개의 섬이라고 보아야 하나, 아니면 울릉도에 부속된 것으로 보아야 하나? 거리로 보아 별개라는 사람이 많겠지만, 규모가 워낙 작고 또 주변에 다른 섬이 없으니 울릉도의 한 부분으로 보아 관념적으로는 하나의 섬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해가 되는 것 아닌가? ‘2島說’과 ‘1島說’이 공존하였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게다가 ‘于山島’라는 이름이 때로는 ‘울릉도’를, 때로는 ‘독도’를 가리켜 명칭상의 혼란이 가미되었으니 ‘1島說’까지 거론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世宗實錄 地理志의 ‘一說’ 기록을 인용하여 “섬은 하나”라고 보는 것은 일본 측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一說에 于山?武陵 1島”라고 할 때의 ‘1島’란 There is on-ly on-e island in the area, and that island must be the holder of both names 의 뜻이 아니라 Both names might designate on-e and the same island of the two 라는 의미일 뿐이다. 본문에서 “섬이 두 개 있고, 맑은 날 마주 보인다”라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도 달지 않았다. 단순히 ‘우산도’나 ‘무릉도’나 다 같이 본 섬(主島)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나타내었을 뿐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우산도’라는 이름에 대해 인식의 괴리가 있었을 뿐, ‘두 개의 섬’이라는 인식에 차이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Mormanne :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우산’이라는 이름에 대해 인식의 차이가 있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무슨 뜻인지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나?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홍승목 :  지방정부에서는 작은 섬, 즉 후의 ‘독도’를 가리켜 ‘우산’ 이라고 하였는데, 중앙정부에서는 한 동안 이를 잘못 이해하여 ‘옛 우산국의 본 섬’으로 이해하였다. 그 증거는 간단하다. 지방정부의 보고를 기초로 할 수밖에 없는 ‘본문’의 내용은 언제나 ‘울릉도(무릉도)’에 대한 기록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인식을 반영하는 ‘제목’ 부분에서는 數 世紀 이후까지 ‘우산?울릉(무릉)’ 이라고 하여 ‘우산도’에 비중을 둔다. 따라서 독자들은 제목과 본문내용 간에 놓인 이상한 괴리를 느낀다. 제목을 쓰는 중앙정부의 기록자와 본문 내용의 결정적 자료가 되는 지방정부의 보고를 쓴 사람 간에 ‘우산국’에 대한 인식의 괴리가 있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아마 이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우산국 멸망 후 울릉도의 이름으로는 종래의 섬의 이름인 ‘울릉?무릉’과, ‘우산국’이라는 나라 이름에서 나온 ‘우산도’ 라는 이름이 함께 쓰였을 것이다. 그런데 현지에서는 원래의 이름인 ‘울릉?무릉’이 압도적으로 널리 쓰였을 것이고, ‘우산도’는 차츰 이름없는 섬인 ‘독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전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에서는 ‘우산도’는 옛 우산국의 본 섬(主島)라는 고정관념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우산’이라는 이름이 선입감을 가지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기록에도 우산도는 본 섬(主島)인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오해는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별도의 의미가 있는 ‘우산’이라는 이름이 ‘독도’의 이름으로 쓰이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상당 기간 혼란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었겠지만, 민간인들이 그렇게 부르니까 정부도 이를 그대로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별개의 섬이 존재한다”는 인식은 뚜렷하다. “맑은 날이면 마주 바라볼 수 있다”고 했는데 ‘혼자서’ 마주 보는 수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울릉도에서 볼 때 평소에는 안 보이다가 맑은 날에만 바라볼 수 있다고 한 것은 독도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다. 또 17세기의 한국의 역사기록에는 “(울릉도와는 별개의 섬인) 우산도를 일본사람들은 마쯔시마(松島)라고 부른다”고 하였는데 더 이상 무슨 의문이 있나? ‘마쯔시마(松島)’는 독도의 17세기 일본식 이름 아닌가? 지금은 ‘다께시마(竹島)’라고 불리지만…

Momanne : 한국측의 기록에 “于山島를 일본인은 마쯔시마(松島)라고 부른다”고 한 것은 일본영유를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 아닌가?

홍승목 : “于山島를 일본사람들은 마쯔시마(松島)라고 부른다”고 부연 설명한 것은 그동안 주로 중앙정부에서 우산도를 잘못 이해하여 ‘울릉도와 동일한 섬’이라거나 또는‘별개의 섬이지만 우산국의 본 섬(主島)’으로 보는 견해가 있어서 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한국의 영유권을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 영유’라는 인식을 반영했을 것이라는 오해를 살 여지는 없다.
일본인이 독도를 ‘마쯔시마(松島)’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 무렵 울릉도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의 지방정부간에 약간의 마찰이 일어나 일본인이 울릉도를 ‘다께시마’, 독도를 ‘마쯔시마’라고 부른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울릉도를 둘러싼 마찰은 한국의 역사적 영유를 일본정부가 재확인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安龍福 사건 기록의 역사적 의의]


Mormanne : 당시의 ‘安龍福 사건’이라는 사소한 episode를 한국 측이 독도 영유권 주장의 주요 근거로 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개인의 영웅담을 영유권의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 과연 타당하다고 보는가? 더구나 安龍福이 범법자로서 문초를 받으면서 진술한 내용이니 신빙성도 의문스러울 텐데…

홍승목 : 어느 얼빠진 정부가 범법자의 황당한 진술까지 마구잡이로 국가의 공식 역사기록으로 채택하여 남기는가? 죄인의 진술이라도 정부가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라고 ‘가치판단’을 하였기에 安龍福의 진술이 정부의 역사기록으로 채택된 것 아니겠는가? “울릉도와 독도는 당연히 한국의 영토”라는 인식에 있어서 安龍福이라는 서민에서부터 중앙정부에 이르기까지 일치했음을 나타내는 기록이니까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安龍福 개인을 위해 한마디 하자면, 그는 남을 해친 파렴치한 범법자는 아니다. “강도를 잡느라 차도에 뛰어 들다 보니 결과적으로 교통신호 위반”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그 당시 국가정책으로 교통신호 위반을 중대하게 취급하였을 뿐이다. 당신네 나라로 비기자면, 벨기에 목동이 양떼를 몰고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와서 풀을 먹이자 프랑스 농부가 이를 따지러 국경을 넘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국경을 넘지 말라”는 임금의 명령을 어긴 것이기에 처벌을 받은 것이다.


[울릉도에서 정말 독도가 보이는가?]


Mormanne :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인다는 것은 사실인가?

홍승목 : 왜 묻는지 알겠다. 「가와까미 겐조」라는 일본의 어용학자가 독도에 관한 논문에서 “울릉도에서 독도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인데… 그 사람은 일본정부의 시책에 따라 “독도는 무조건 한국영토가 아니라야 한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 두고, 독도에 관한 한국의 역사기록을 일본에 유리하게 왜곡 해석하거나, 심지어는 기록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만 자기도취가 심하여, 금방 드러나는 거짓말을 하면서 수학적 증명까지 해 보였으니 다른 부분의 논리는 오죽하겠는가?
울릉도 출신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어린 시절에는 맑은 날이면 산에 올라가 독도를 바라보는 것이 재미였다고 한다. 요즈음은 공해가 심해져 어떤지 모르겠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본 것은 역사기록에도 가끔 나온다. 1694년에 정부의 지시에 따라 울릉도를 순찰한 어느 정부관리의 기록에 “(울릉도에서) 쾌청한 날 산에 올라가 동쪽을 바라보니 불과 300리(65마일) 거리에 섬이 보인다”고 하였다(註: 鬱陵島事蹟, 張漢相, 《숙종실록》숙종21년). 울릉도와 독도의 실제 거리는 50마일인데, 눈짐작으로는 상당히 정확한 것이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았다는 기록임이 분명하다.
더우기 일본인도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 본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있던 1919년에 울릉도를 방문한 일본인 학자가 “공기가 깨끗할 때 동남쪽으로 바다 멀리 섬(독도)이 보인다”고 기록하였다. (註: 鬱陵島植物調査書, 中井猛之進, 朝鮮總督府, 1919) 「가와까미」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증명하려고 한 것은 “눈을 감으면 안 보인다”는 것인지, 아니면 “뒤로 돌아 서면 안 보인다는 것인지”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왜 그런 증명이 필요한지는 모르지만…


[일본 고지도의 해석]


Mormanne : 일본 古地圖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표시한 것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홍승목 : 아마 일본 고지도에 한국의 영토로 인정한 것이 더 많을 것이다. 그 당시의 일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테니… 물론 일본 정부는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숨겨놓고 있겠지만… 어쨌든 독도를 일본영토로 표시한 지도도 사실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 한국영토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Mormanne : 무슨 뜻인가

홍승목 : 일부 지도제작자들이 울릉도를 일본영토인 줄로 착각하게 되면 독도가 덩달아 일본영토로 표시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위치만 보더라도 독도가 울릉도에서 더 일본 쪽에 있으니까... 그런데 울릉도는 명백히 한국의 영토이니 이 지도들이 일본에게 아무런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Mormanne : 한국의 영토임을 반증한다는 뜻은?

홍승목 :  일본 고지도의 공통점은 울릉도와 독도를 한꺼번에 한국영토로 표시하거나 혹은 한꺼번에 일본영토로 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두 섬을 ‘공동운명체’로 보는 것이 양국 국민들의 공통된 역사적 시각이다. 물론 한국의 古地圖는 두 섬을 공동운명체로 보면서 일관성 있게 한국의 영토로 기술하고 있다. 일본의 古地圖도 두 섬을 모두 일본영토로 보든 한국영토로 보든, 공동운명체로 인식하는 것은 명백하다. “만약 울릉도가 한국영토라면 독도도 당연히 한국영토”라는 인식을 나타내는 것 아닌가?
지도뿐만 아니라 역사기록에서도 독도에 관해서는 반드시 울릉도에 곁들여 언급되고 있으며 독자적으로 언급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공동운명체이되 대등한 것이 아니라 독도가 울릉도의 종속된 섬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다. 일본이 “울릉도는 한국영토, 독도는 일본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역사와도 단절된, 20세기의 새로운 주장이다.
일본이 지도를 통해 독도를 진정으로 자기네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려면 울릉도를 한국영토로 그리면서, ‘동시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그린 지도를 다수 제시하여야 한다. 물론 일본의 영유의식이 이렇게 하여 입증된 경우에도 일본영토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한국과 영유권을 겨룰 자격이 인정되는 것뿐이다. 지금까지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하면서 주로 ‘울릉도’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고 있다. “울릉도에 약간의 연고가 있었으나 한국영토인 것이 분명하니까, 그 옆에 있는 독도라도 먹어야겠다”는 심정을 표시하는 것일 뿐이다.

Mormanne : 한국 측은 왜 이러한 입장을 국제사회에 발표하지 않나?

홍승목 :  독도문제에 대한 한국 측의 시각을 요약하자면, “독도문제에 있어서 일본의 입장은 너무나 억지이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진심으로는 시대착오적인 식민주의적 영토편입 조치를 근거로 할 뿐이다. 주로 한국의 역사적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트집을 잡은 후, 그러니까 일본영토라는 것이다. 일본의 주장은 대꾸할 가치도 없고, 독도문제를 분쟁이라고 인정하기도 어렵다”라는 것이다. 한국 국민의 감정은 “명명백백한 것이 어떻게 분쟁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ICJ 뿐만 아니라 중재재판에 가려고 해도 반대가 많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정부나 학자들이 한국의 입장을 좀 더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일본의 ‘고유영토설’과 ‘영토편입설’ 병행주장]


Mormanne : 일본은 독도가 “1905년 편입조치 이전부터 일본의 고유의 영토이고 1905년에는 시마네 현에 편입시켰을 뿐” 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 ‘고유영토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홍승목 :  거짓말을 하다가 들키자 더 큰 거짓말을 해서 어려움을 모면하려는 유치한 발상이다. 더우기 그 거짓말끼리 서로 모순되니…

Mormanne : 매우 강한 어조인데 상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홍승목 :  ‘고유영토설’이란 일본이 2차대전 패전 후 과거의 제국주의?식민주의의 효력에 의문이 생기자 종래의 ‘영토편입설’을 보강하기 위해 갑자기 지어낸 것이다.
이웃사람이 어느 날 “고아를 발견하였기에 내가 데려다 키우기로 했다”고 하다가 나중에 강도유괴 행위가 발각되자 “그 아이는 전부터 내가 키우고 있던 아이”라고 떼를 쓴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어처구니는 없지만, “꼭 그렇다면 ‘전부터’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인가, 어떻게 입증되는가, 이미 키우고 있었다면서 왜 새로 데려왔다고 했나” 등을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이 1905년에는 독도가 ‘무주지’라고 하면서 영토편입을 했다가 이제 와서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언제부터’ 일본 영토라는 말인지, 주장 근거는 무엇인지, 1905년에는 왜 ‘무주지’라고 선언했는지, 일본에 돌아가면 문의해 보라. 아마 아무런 입장조차 없을 것이다.
독도에 관한 일본측의 최초의 기록은 1667년의 ‘온슈시초고끼(隱州視聽合紀)’인데 “울릉도?독도는 한국의 영토”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일본측의 사료에 울릉도?독도가 기록되었으니 자기네 영유권의 근거가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프랑스도 미리부터 조심하는 게 좋겠다. 일본 책에 ‘프랑스의 빠리(Paris)’라는 기록이 많을 텐데 언젠가 일본이 “빠리가 일본 책에 기록되어 있으니 이는 일본의 영토라는 증거”라고 우길 때가 올 지 모르니…

Mormanne : 1905년에 분명히 ‘무주지(terra nullius)’라고 하면서 ‘영토편입’ 조치를 했나?

홍승목 : 1905년 일본내각이 독도에 관해 채택한 결정의 요지는 “영토편입을 하라는 어느 개인의 청원을 접수한 것을 계기로 … 검토한 결과 타국의 영토라고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되어 … 국제법에 영토편입으로 인정될 조치를 한다”는 것이다. 자기네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것을 여러 가지로 밝혔다. ‘영토편입 청원’이라든가 ‘타국의 영토라는 증거’ 云云, 그리고 ‘국제법상 인정될 조치’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한국의 영토’인줄 너무나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無主地(terra nullius)’ 라는 표현조차 차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던 한국의 영토를 강탈하면서 편법상 ‘무주지’ 취급을 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정부가 정말로 terra nullius로 인식하여 영토편입을 하는 경우에는 이해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나라에 事前 통보한 후 편입하거나, 적어도 관보에 게재하여 나중에 문제가 대두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독도에 대해서는 가장 가까운 나라로서 긴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나라인 줄 알면서도 한국에 대해 편입조치를 숨겼고, 한국이 알게 될까 불안하여 관보게재도 피하였다. 도둑이 물건을 훔쳐가면서 주인이 알지 못하도록 조심하는 것과 같다. 편입조치를 한국에 숨기려다 보니 일본국민조차 그 사실을 잘 몰라서 편입조치 후에도 독도를 계속 한국의 영토로 표시한 일본사료가 발견된다.
이제 와서 식민주의가 힘을 잃고 1905년의 영토편입 조치로는 통하기 어렵게 되고 오히려 “1905년까지 영유권이 없었다”는 불리한 증거가 되니까 ‘고유의 영토’ 라고 한다. 자기 영토를 왜 새로이 자기 영토로 편입해야 하는지, 자기 영토를 처리하는데 왜 국제법이 거론되는지 도무지 설명을 하지 못한다. ‘고유’ 라는 것이 언제부터인지도 말못하고 … 입증할 수가 없으니 말할 수가 없지. 거짓말이 힘을 잃자 새로운 거짓말을 꾸몄는데, 앞의 거짓말과 모순되면 “먼저 한 말은 틀렸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텐데, 뒤에 한 말이 거짓인 줄 드러날 경우에 대비해 “어쩌면 앞에 한 말이 사실일 수도 있고...”라고 한다.
지난 40여 년 간 독도문제에 관해 국제적으로 일본이 자기의 일방적 주장을 하도록 내버려두고 한국은 입다물고 조용하게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워낙 주장이 약하니까 국제적으로 수긍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고지도(古地圖)에 대한 의문]


Mormanne : 한국의 고지도에 대해 중대한 의문이 있다. 상당수 한국의 고지도에는 우산도가 울릉도보다 본토에 가깝게, 그것도 울릉도와 거의 비슷한 크기의 섬으로 그려져 있다. 무슨 이유인가? 일본은 이를 두고 “우산도는 울릉도를 가리킨 것이고 독도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홍승목 :  해석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이다. 대강 18세기 후반부터 독도가 지도상 제자리를 찾아가기 때문에 한국의 영유권 주장을 결정적으로 훼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Mormanne : 전혀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인가?

홍승목 :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아직 수긍이 가는 설명을 보지 못했다. 개인적인 견해가 있기는 하지만 검증된 것은 아니다.

Mormanne : 다른 곳에서 인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들려주겠는가?

홍승목 : 앞서 설명했듯이 당초 우산국이 신라에 의해 정복되자 울릉도의 섬이름으로는 ‘우산도’와 ‘울릉도(무릉도)’가 동시에 쓰였을 것이다. 그런데 현지에서는 당연히 본래의 섬이름인 ‘울릉도(무릉도)’라는 이름이 압도하였을 것이고, ‘우산도’라는 이름은 주인없이 떠돌다가 차츰 독도라는 이름없는 섬의 이름으로 쓰이게 되었을 것이다. 지방정부의 보고서는 당연히 현지의 관행에 따라 ‘독도’라는 의미로 ‘우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을 것이지만 중앙정부의 관리들은 달랐을 것이다. 별도의 설명이 없는 한 ‘우산국’이라는 이름의 영향 때문에 ‘우산’은 과거 우산국의 본 섬(主島)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방정부의 보고서에서는 울릉도(무릉도)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고, 또 “우산도는 두 섬 중에서 작은 섬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역사기록자 뿐만 아니라 지도제작자들도 혼란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였다.
“우산도는 분명 우산국의 본 섬(主島)일텐데 울릉도 보다 더 작은 섬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필시 본토에서 더 가까운 위치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본 섬(主島)이 두 섬 중 크기가 작은 쪽이라는데 위치마저 본토 보다 멀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듯 하다. 우산도를 “울릉도보다는 작지만 그에 가까운 크기로” 그리고 있는 것도 ‘우산도가 본 섬(主島)’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하겠다. 지도상의 다른 섬의 형태로 미루어 보면 당시의 초보적인 지리적 인식으로 동해의 두 섬에 대해서만 유난히 정확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상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개인적 가설에 불과하지만 지도상의 다른 의문점도 이 가설에 따라 설명할 수 있다. 즉, 우산도가 제 위치를 찾아 울릉도의 동쪽으로 옮겨가면서, 한 동안 우산도의 크기에 대해 일대 혼란에 빠진다. 이는 이렇게 설명된다.
첫째 부류로서, 우산도가 지금까지의 과장된 크기, 즉 울릉도에 미치지는 못하나 절반 정도의 크기를 유지하면서 단순히 울릉도와 위치만 바꾼 것이 있다.
둘째 부류로서, 울릉도의 크기를 유지하면서 우산도를 울릉도보다 훨씬 크게 그린 것이 있다. 지도 제작자가 “우산도는 우산국의 본 섬(主島)”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채 위치를 바꾼 결과이다.
셋째 부류로서, 우산도를 울릉도와의 상대적 비율에 가깝게 매우 작은 섬으로 그린 지도이다. ‘울릉도 보다 외측에 위치한 작은 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산도가 본 섬(主島)’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비로소 ‘매우 작은(tiny) 섬’이라는 현지의 보고를 편견없이 반영한 것이다.
하여튼 ‘우산도’라는 이름을 두고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때로는 ‘울릉도’로 때로는 ‘독도’로 이해하다 보니 이름의 주인, 위치, 크기 등에 상당기간 혼란이 계속되었다. 사실 하나의 섬이 數百 年 간 하나의 이름으로 꾸준히 통용되었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대인의 편의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도상으로 보더라도 ''''두 개의 섬''''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뚜렷하였다는 것이다.

Mormanne : 일본에서도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에 대해 한동안 혼란을 겪다가 결국 두 섬의 이름이 바뀌었으니 이보다 여러 세기 전에 한국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홍승목 : 섬의 위치나 크기에 관한 지식이 현대인의 관점에서 볼 때 정확치 못한 것은 울릉도와 독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거의 모든 섬에 공통되는 것이다. 아마 한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 공통되는 문제일 것이다.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고 하여 영유권 입증이 불충분하다고 하면 한국의 대부분의 섬이 20세기 초까지는 무주지였다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한국이 이 섬들을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선점했고 한국영토가 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해괴한 논리가 아니겠는가? 역사기록은 그 시대의 과학기술 수준을 감안해 해석해야 한다. 여러 세기 전의 지도에 두 섬이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이 한국의 영유권을 부인하는 증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영토에 속하는 섬으로서 고지도에 나타나는 것은 일반적으로 수십 개에 불과하다.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여 영토가 아닌가? 울릉도와 독도는 주변에 다른 섬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섬보다는 그 존재가 비교적 쉽게 인식되었고 지도에 나타난 것일 뿐이다.

고지도상으로 위치는 바뀌었지만 하여튼 한국의 기록에 울릉도와 독도가 나타나기 시작한지 수 세기가 지나서야 일본의 기록에 두 섬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온슈시초고끼(隱州視聽合紀)’의 기록에서 보듯이 ‘한국의 영토’라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서... 한국의 고지도를 일본의 후대의 지도, 그것도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후 그려진 지도와 평면적으로 비교하여 “일본의 지도가 더 정확하므로 일본이 독도에 대한 인식이 더 높았다”고 보는 위험은 피해야 한다. 현대에 한국에서 만든 유럽지도와 15세기에 유럽인이 만든 유럽지도를 비교하면서 유럽의 어느 섬이 한국의 지도에는 정확하게 나타나는데 유럽지도에는 나타나지도 않으니 이는 그 섬이 ‘한국영토’인 증거라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竹島(다께시마)’와 ‘松島(마쯔시마)’의 명칭 상호교환]


Mormanne : 변방 섬의 이름이나 크기, 위치가 정확하지 못한 것은 근세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다께시마(竹島)’와 ‘마쯔시마(松島)’가 가리키는 섬이 중도에 서로 바뀌었다는 이론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홍승목 :  “러시아의 지도제작자가 착오로 이름을 서로 바꾸어 붙인 것이 계기가 되어 두 섬의 이름에 혼란이 왔고 궁극적으로는 이름을 서로 바꾸게 되었다”는 주장인데,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물론 독도가 자기네 영토가 아니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고...

Mormanne : 방금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고 설명하지 않았나?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보는데...

홍승목 :  바뀌는 배경이 전혀 다르다. 혹시 자녀가 있나?

Mormanne : 있는데...

홍승목 :  만약 지나가는 사람이 착각하여 당신 아이와 옆집 아이의 이름을 바꾸어 부르면 당신 아이의 이름을 버리고 옆집 아이의 이름을 쓰겠는가?

Mormanne : 아하, 무슨 뜻인지 알겠다. 그러니까 일본이 “유럽의 지도제작자의 실수를 계기로 하여 이름을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는 것은 두 섬이 모두 자기네 섬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뜻이 아닌가?

홍승목 :  백 번 양보하여, 두 섬이 모두 자기네 섬이었다면 그럴 가능성이 아주 약간은 있었다고 하자. 그러나 울릉도가 한국의 섬인 것을 명백히 인식하면서 독도와 그 이름을 서로 바꿔치기 한 것은 확실히 독도도 한국의 영토인줄 알았거나, 적어도 자기네 영토는 아니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것 아닌가? 자기네 섬의 이름과 외국 섬의 이름이 서로 바뀐 것을 보면 항의하거나 기껏 무시해 버리는 것이 상식일텐데... 일본은 왜 이렇게 “우리 조상들이 몰상식하여서...” 하면서 스스로를 폄하하는지 모르겠다.

Mormanne : 아무래도 일본이 영유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그러나, 서양식 국제법이 도입되기 전에는 영유의식이 없이 한?일 양국 어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해 온 것으로 보는 것은 어떤가?

홍승목 :  개인이든 민족이든 심지어 야생 짐승도 경쟁자와 만날 때 본능적으로 서로의 영역을 분명하게 하려고 한다. 이렇게 하여서 장차 일어날지도 모를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유독 독도에 대해서만 양국이 명시적인 합의도 없이 영유의식을 기피했다는 가정에는 찬성할 수 없다. 安龍福 사건만 해도 영유권 침해를 느끼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의식의 자연적인 발로라고 본다.

Mormanne : 장시간 자세한 설명에 감사드린다. 이제 한국 측의 시각을 상당히 이해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국 측에서 자신의 견해를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글로 발표하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연구를 하다가 의문이 생기면 다시 찾아와도 좋은가?

홍승목 :  솔직히 귀하의 전문성에 대단히 감명받았다. 제 3국의 학자한테서는 기대하지 않던 대단한 수준이다. 어쨌던 개인적으로는 즐거운 대화였다. 오늘처럼 예고없이 찾아오면 시간을 내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사전에 연락만 해주면 기꺼이 맞겠다.

- 대담은 1996년 6월 14일에 있었고, 이 글은 [대한국제법학회논총 2003년 10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



홍승목(洪承睦)

● 1980년 이래 외교통상부 (단, 1998~2003.2 휴직, 국제기구 근무)
- 조약국 國際法規課 (1989~1990, 1993~1994, 1996.3~7)
- 조약국 條約課長: 1996.8~1997
- 대법원 파견 (국제협력 심의관): 2003.3~
● 1998-2003.2: UNESCO 사무국 (빠리)
- 대외협력실 亞?太 課長: 2001-2003.2
●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국제법)
● 영국 Sussex 대학교에서 International Relations 수학 (MA)
● 호주 Adelaide 대학교 환경대학원(Mawson Graduate Centre for Environmental Studies)에서 地球環境法 연구
● 2011 현재, 네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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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용한 글 감사합니다. ^^

    2011/06/21 16:14 [ ADDR : EDIT/ DEL : REPLY ]
  2. tera

    너무나도 좋은 글 잘봤습니다.
    이 내용만 숙지해도 어느 일본인과 논쟁이 붙어도 이길 수 있을듯하네요.
    감사합니다.

    2011/08/19 12:57 [ ADDR : EDIT/ DEL : REPLY ]
  3. 카카킹,tera님.
    저는 보기쉽게 조금 다듬었을 뿐이니.. 읽어주신게 오히려 정말 감사합니다!

    2011/08/21 14:22 [ ADDR : EDIT/ DEL : REPLY ]
  4. 비밀댓글입니다

    2011/09/01 16:02 [ ADDR : EDIT/ DEL : REPLY ]
    • 앗, 안녕하세요 tera님.
      짐작하신대로 벌어먹고사는 일이 너무 바빠서 진짜 갈망하는 일인 블로그질을 못한지 오래됐어요ㅠ 뭐 다 핑계고..더 부지런하질 못하고 있는 자신이 원망스러워요ㅋ
      곧 재개할 참입니다!

      2011/09/02 16:06 [ ADDR : EDIT/ DEL ]

BOOK2011/05/03 23:25


6년째 아침저녁으로 디딜 수밖에 없어온 구로디지털단지 3번 출구에
드디어 빅이슈 등장.
출퇴근시간 유동인구로 따지면 꽤 괜찮을 이 자리에 김밥 떡 샌드위치 주먹밥 등과 그 외
온갖 찌라시들이 촘촘히 자리하는 동안 빅이슈가 시작되지 않는게 때로 궁금했던차였다.


이틀째인것 같은데
오늘 아침 뒤에서 밀려 내려오는 인간이 평소보다 좀 적기에
재빨리 3천원을 꺼냈다.



그런데
놀라웠던 건, 몹시 반가와하시는 빅판 아저씨의
"아...드디어 하나다.."  라는 감격에 겨운 의외의 대사.

본의 아니게 마수걸이를 해드린 것. 흠;; 이틀째에 말이지.
(아저씨의 어조가 '오늘처음'으로 들리지 않았던건데, 혹시 첫날 여기서 빅이슈 구입하신분 제보 부탁ㅋ) 

계단 바로 아래라서 사람들이 밀리니 오히려 사기가 좀 힘들어요. 조금 비껴 계시는게 나을것 같아요.
마수걸이 당첨자의 책임인양 팁을 좀 드리고
그렇게 어쩌다보니 구디단 3번출구 빅판 아저씨의 역사를 함께 해버렸다.


음. 어쨌든
빅이슈에 궁금했던걸 해결하게 된 것이 기쁜데,

뭐,,
취지를 알고 있고, 취지에 동의하고, 절망을 의지로 또 실천으로 옮긴 그분들의 희망에 도움도 되고 싶고.
하여, 처음 손에 잡히는 두께가 '음...삼천원씩이나...하는데..' 스럽긴 했지만.
보통의 시사 격주간지가 심어놓은 가격대비 부피 기준을 똑같이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초가 있었으니 패스.



정독하는데 한시간 쯤 걸렸다. (보통 사람들보다 좀 느림)
소감은 크게 세 가지.


1.
아, 이건 너무 착하잖아! 아 적응안돼 T.T
그간 난 정말 나쁘고 독하고 강한 텍스트에 내성이 생겼구나.
나도 한때는 좋은생각, 샘터 이런거 보던 사람이라규.
꾸준히 보면 순수했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겠어.


2.
열다섯 장 남짓하지만 글로벌한 책이다보니 정말로 꽤 위아더월드가 느껴져!


3.
취지 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홈리스의 자활과 연관된 꼭지가 꽤 있구나.
고작 한 권으로 확언할 수 없고 꼭 나쁘다는건 아니지만  이건, 어쨌든 굉장히 의외였다.
삼천원 책값 중에 1600원이 빅판들께 간다. 그리고 그 중 50%를 저축해야 한다는 빅판이 되기 위한 약속이 존재한다.
("판매하면서 고개를 당당히 든다"라는,  나도 본디 태어날땐 착했던게 분명하다고 느낄만큼 짠한 선언도 있다.)

이 정도가 책의 앞뒤에 씌어 있으면, 책을 살 때마다 이게 그들을 돕는 착한짓이기도 하다는 칭찬을 스스로에게 퍼부을 수 있다.
그리고
책장을 펼치고부터는, 이 읽는 행위까지  홈리스들을 돕기 위함이라는 생각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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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뽕

    요즘 디지털단지역에 아저씨 한분이 까치발까지 들어가며 뭔가를 팔고 계시던데, 그 뭔가가 이거였군요. 음악듣고 출근 하는지라 뭐라고 소리치시는데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었는데, 가끔은 세상의 소리도 들어야겠군요. 그분의 눈빛이 생각나네요. 물건파시는데 참 열정적이시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간절함이였군요.

    2011/05/04 10:15 [ ADDR : EDIT/ DEL : REPLY ]
    • 빅판수칙 3 : 빅판으로 일하는 동안 미소를 지으며 당당히 고개를 듭니다.

      함 사보셔~^^

      2011/05/04 15:45 [ ADDR : EDIT/ DEL ]

BOOK2011/04/18 22:13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의 원작 소설은,
코맥 맥카시에게 따라 붙은 '퓰리처' 따위의 묵직한 수식 때문에 이거 재미부족이라고 대놓고 말하질 못했으나ㅋㅋㅋㅋ 그래,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장으로도 묘사는 어찌나 지독시리 충분한지 그 활자들을 머리속 영상으로 조립하느라 피곤할 지경인데다, 헤모글로빈 돋는 표현들은 핏빛 표지를 배신하지 않아 흡족한데도,
영화의 도움 이전에 소설부터 봤더라면 어느 정도의 흥미였을까, 나는 과연 소설속 안톤쉬거에게서 이런 차원의 공포를 느낄 수 있었을까를 판단키가 어려웠으니 어쨌거나 전체적으로 영화 만큼의 재미는 없었다고.

그래서 더욱, 이런 과대평가 된 것이 아닐까 싶은 소설을 가지고, 영화역사상 최고로 호러블한 전대미문의 절대악 캐릭터 안톤 쉬거를 '가시적'으로 창조하옵시고 아멘, 부적절한 단발머리가 얼마나 섬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시었으며, 악당과 도망자가 한 공간에 있지 않아도 월매나 살벌하게 무서운 추격씬이 탄생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옵신 코엔형제에게 또한번 그저 기립하여 박수치며 할렐루야를 부르짖었던 것이다.



으악! 오늘밤 꿈에 나올것만 같아!!!!!
코엔형제는 인터뷰에서, 안톤 쉬거의 이 헤어스타일은 70년대 어느 사창가의 바에 앉은
한 남자의 사진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 했었다.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의 원작 소설.
겨우 스무장 정도의 이 이야기가  영화와 고스란히 겹치다니 놀랍다.
정말이지 그 대작의 원작이 단편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 분량에 130분 영화를 아주 잘 압축해놓았다. 아니지, 영화를 아주 잘 늘렸다. 아 그것도 아니지,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적당하게 간결한 분량이다.

거의 30분이면 읽어버리는 원작 소설로, 개봉날 아침 회사도 띵구고 동네 극장에 처박혔던 수년전 그날이 생생해질 정도로 또다시 몰입했고, 글자로 된 애니스와 잭 역시 새로운 떨림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영화 속의 죽은 잭, 겨울 브로크백의 첫만남을 고스란히 새기고 있는 셔츠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끼던 애니스, 그리고 영화 밖의 죽은 히스레저가 뒤죽박죽되어 영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통에 거의 눈물이 핑 돌았다.



+
대부분의 영화속 동성애가 실제와는 달리 미남미녀 배우를 택함으로써 일차적인 완충을 시도하듯,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할이 소설 속 애니스와 잭보다 훨씬 잘생긴 건 그런 당연한 이유일거다. (소설속 잭은 뻐드렁니여서 4년만에 재회한 그들이 키스할때 애니스의 입술이 찢어진다)
창작물 속 동성애의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미남 미녀라는 것이 동성애에 대한 환상을 부추긴다지만, 어디 이성애는 안 그런가. 사회적 약자로 분하는 소지섭, 임수정이나 김태희, 이병헌의 얼굴을 한 비밀요원의 존재는 어디 현실적인가 말이다.
적어도 같은 기준을 가지고 리얼리티를 추구하자고.


+
이 책은 애니 프루(Annie Proulx)의 단편 11작품을 모은거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이 고작 스무장의 글에서 탄생할 수 있었으리라곤 상상하기 힘들었기에, 뭔가 잭과 애니스는 절대 등장하지 않을듯한 첫번째 단편에 이상하다 이상하다 했다.하하;;
음, <쉬핑뉴스 the shipping news>도 이 작가의 소설 원작이군.
이 책속 다른 단편들도 꽤 좋다. 퓰리처 맥카시보다 못할것 없어 보이는데 말이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6점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사피엔스21


브로크백 마운틴 - 8점
애니 프루 지음, 조동섭 옮김/Media2.0(미디어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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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2011/04/13 09:30

큰 홍보 없이도 수많은 힘든이들의 손에 쥐여졌던  명불허전, 낭중지추의 책이라 그 내용을 자세히 풀어놓을 필요는 없겠다.
쉽지 않은 청춘을 통과하면서 꿈 꿀 겨를 없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현실적인 대안을 냉혹한 꾸중으로 포장해 제시했던 책이다.


얼마 전
방황하는 동생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고민하는 오랜 친구와 나름 최선을 다해 머리를 번갈아 쥐어뜯어주다가
예전의 어린 나에게 가시 돋친 매로 기능했었던 이 책이 떠올라 책장 구석구석을 뒤졌다.
난 책을 절대 빌려주지 않는데 이 책이 사라져있었고 언젠가  이 책을 꼭 읽히고 싶었던 사람에게 건넸던 기억을 해내곤 가벼운 욕을 한번 했다.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젠장.)



다시 서점을 들여다봤더니 그새 plus edition이 깔끔한 양장으로 새로 나와 있었다. 

문득, 굉장히 궁금했다.
내용을 더 보강했다는데  보강된 내용도 물론이지만
그것보다는,
그 송곳같았던 김형태님의 문장들이 지금의 내게는 어떤 느낌일지.




안어울리게 뭔 양장이얏,쒯! 하면서 샀고
지난 토요일, 다섯시간만에 끝내면서
예상치 못한 묘한 기분에 싸였다.




보자.. 벌써 7년쯤 전.
내가  모든면에서. 정말 모든 면에서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었을때 이 책을 만났고
그때 나는 이 진심어린 상품의 정확한 타겟이었다.
그 후로 뭐 꼭 이 책 때문에 행동했고 상황이 나아진거라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낱말 하나하나가 가슴에 부딪쳐 그예 눈물을 쏟고 말았던걸 기억하면
분명 모멘텀이 된것이 사실일거다.


그리고 지금.
그때와는 많이 다른 입장이 되었음을 느낀것이
질풍노도들이  털어낸 그 고민들에 답하는 김형태님의 말에 나도 한 숟가락씩 더하고 있더란 말이다.
1. 나이를 먹었다.
2. 확실히 예전보다는 훨씬 좋은 상황에 있다. (같은 30대의 고민들도 있었던걸로 봐서)
3. 이론에만 빠싹한 헛기술자가 됐다.
요런 가능성일텐데 음.. 3번은 아니라고 자신할 수가 없네ㅋ



이렇게 어느덧,,
감히 범접할 수 없던 형태님에게 슬쩍 새끼발꼬락(의 때를 먹고 사는 벼룩) 하나 정도를 걸치고 있게 된 나를 느끼면서 약간의 안도를 하고
이제 인생의 10개년 계획을 세워 꾸준하고 끈질기게 살아낸 다음, 그땐 힘겨운 2,30대들에게 하나의 조언이라도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있어야겠다는 새로운 층위의 다짐을 하게됐다.

좋은 책이다.





좋은 덧.
이상하게 기억에 남은 어구 하나.
"부지런한 몸매".
난  날씬한 몸매가 아닌 "부지런한 몸매"가 되기로 했다.



나쁜 덧.
책이 너무 곱다. 개나리색의 양장을 하고 이우일의 삽화까지 챕터 사이의 한면씩 통으로 들어갔다.
(이것들이 책값 올리는 요소라 할지라도)여기까진 좋았는데
참 정말로 해괴하리만치 거슬렸던게 있었으니
본문에  누구의 기준인지 모를  형광펜 밑줄이 미리 그여있다는것.
친절해서 몸서리가 쳐져(박완규삘)인 이 밑줄의 정체는 뭘까. 저자가 직접 판단한 요점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으나
저자와 완전히 합의되지 않은 편집자의 기준이라면 책의 가치를 반토막 냈다고 느낄 정도다.
나의 밑줄은 그것과  거의 겹치지 않는단 말이다!
읽는 동안 생각을 어찌나 어지럽혔는지 당장 형태님 블로그로 쳐들어갈뻔했다.




너, 외롭구나 - 8점
김형태 지음/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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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asminex

    이 글들은 니가 직접 쓰나? 아니면 복사해온거가?
    니가 쓰는거면 정말 글 잘 쓰는 구나....

    2011/04/13 11:18 [ ADDR : EDIT/ DEL : REPLY ]
    • 아니 이것은 최고의 칭찬 아닌가!
      이거 니가 쓴거 아니지? 이런.
      고맙다네.. 더욱 열심히 써보겠네..

      2011/04/13 12:05 [ ADDR : EDIT/ DEL ]
  2. 행복한용

    이런 책도 있었군요.
    진즉 알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방황과 맘고생을 조금 덜했을까요? ^^
    좋은 포스팅 재밌게 보고 삽니다.(갑니다의 오타지만. 틀린 말도 아니니.. ^^)

    2011/04/13 15:37 [ ADDR : EDIT/ DEL : REPLY ]
    • ㅋㅋ 머 구체적인 도움 아니더라도 뭔가 영향은 미쳤을것 같아요~
      행복한콩님 감사합니닷!(용의 오타지만. 틀린말이네요^^)

      2011/04/13 17:35 [ ADDR : EDIT/ DEL ]
  3. 강뽕

    글빨(?)에 빠져 바로 구매해야겠네요. 이런책이라면 복지기금 맘껏 써주리라~!!!

    2011/04/14 09:24 [ ADDR : EDIT/ DEL : REPLY ]
    • 강뽕 고맙! 니도 요새 생각 많을테니 뭐 어떻게라도 좀 도움될듯!

      2011/04/14 15:08 [ ADDR : EDIT/ DEL ]
  4. 개나리

    페북은 종종 구글 크롬으로 들어오는데 ...폰트랑 안맞나봐..글씨가 지워져서 나와...댓글의 폰트는 잘 보이는데..ㅠ.ㅠ

    2011/04/14 14:31 [ ADDR : EDIT/ DEL : REPLY ]
    • 흠,, 꽤 여러분께서 말씀하시는걸 보니 이거 분명 뭔가 문제가 있는것 같군요.
      폰트를 걍 평범한 걸로 바꿔야겠어요;;; 알려주셔서 진짜 감사하고... 조금후 바뀐거 잘 보이시는지 다시 알려주시면 진짜진짜 감사드릴 예정입니다^^

      2011/04/14 15:10 [ ADDR : EDIT/ DEL ]
  5. 진달래

    어 잘 보인다...늦어서 미안..ㅋㅋ

    2011/04/19 00:42 [ ADDR : EDIT/ DEL : REPLY ]
  6. 유인유적

    아악.. 도메인이 헤드윅이야..ㅠㅠ 선점 하신 분이 여기 계셨군요 ㅎㅎ

    2011/05/20 11:14 [ ADDR : EDIT/ DEL : REPLY ]
    • 아ㅎㅎ 네,,,ㅎㅎ
      그러나 블로그 유입증대와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ㅋ

      2011/05/20 13:17 [ ADDR : EDIT/ DEL ]
  7. 안녕하세요. 답방 왔습니다. 읽고 싶은 책이네요. 책 소개 감사합니다.^^

    2011/10/30 17:57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밤비마마님!반갑네요~^^
      저는 뭐.. 일방적으로 이미 꽤 친한 느낌이에요!ㅋㅋ

      2011/10/31 09:03 [ ADDR : EDIT/ DEL ]
    • 비밀댓글입니다

      2011/11/12 05:58 [ ADDR : EDIT/ DEL ]
    •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2011/11/14 12:16 [ ADDR : EDIT/ DEL ]

BOOK2011/03/07 22:05


참 부러운 사람을 순서대로 꼽자면

1. 정말 대단한 필력의 소유자. 여기서 필력이라함은 단순한 글빨이 아니라 넓고 깊은 지식, 지혜, 유머감각 포함.
2. 보이는걸 복제하길 넘어서, 복잡한 머리속을 ‘그림’으로 뚝딱 바꿔내는 사람.

나는 이렇다.
(아니, 그 외에 본능을 극복하는 인간들, 로또 맞은 인간들 등등 많긴하다)

그리고 이 두가지를 후천적으로 배워 이루려는 노력은 확실히 한계에 봉착하고야 마는, 그야말로 천부재능이라는 믿음이 깊었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무척 많겠지만 암튼 나는 그렇다.
타고났거나, 아니면 적어도 수십년을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위태롭게 자라야 가능하다고 생각해온거지.
음, 그나마,
그림 그리는 능력은 노력에 의해 도달할 수 있는 상한이 필력보다는 좀 높다고, 내세울 만한 근거는 없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일단 주위에 그림 잘그리는 어느 아이가 ‘배우면 다 된다’고 말했고;;; (야, 그건 니 입장이라고!), 전혀 그런 친구가 아니었는데 졸업후 한참 지나 갑작스레 미대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하기 때문이다.

난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 그다지 평탄치만은 않은 삶이 쌓여오면서 글만으로는 내속에서 폭발하는 뜨거운 무엇을 감당키가 마뜩잖아 그런것 같단 말이다. 그래서 이제까지의 내 신념에 따라, 내게 타고난 기본기가 있는지를 먼저 알아내야만 했다.


그림.
똑같이 베끼는, 완전히 실물처럼 그려내는 그런것 말고, 연필로 아무렇게나 죽죽 긋고 목탄 같은걸로 아무렇게나 쓱쓱 칠한것 같은데도 뭔지 모르게 감동을 주는, 속을 틔우는 느낌있는 그림을...
아...
그림에 대한 욕망이 최우선이라면 당장 미술학원에 등록하고 싶지만(어떤 아이가 ‘배우면 다 된다!’고 했단 말이야!),,,
도달키 힘들지만 애써보고싶은 꿈 몇개가 더 우선순위에 포진해있고, 직장에 매여 시간도 모자란다.
(물론 시간이 모자란다는 말처럼 큰 핑계는 없다. 잠을 8시간씩 처 자잖아?)



재작년엔가 한겨레 문화센타에서 인체크로키 수업을 몇번 들은적이 있었는데,
(먼저 이미지관리 하고 시작하자면) 난 여러가지 수업을 자주 들으러 다니는데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절대 빠지지 않고 지각도 절대 하지 않으며 필기는 기본에 녹음, 녹취;;, 도청;;;;;, 하다못해 순간암기까지 시도하는 좀 모범 수강생인데ㅋ 어쩐지 이 수업은 세번인가 듣고 환불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림을 그토록 그려보고 싶었는데도, 그리고 인체는 그림의 정점이라고 생각했음에도 웬일인지 그랬다.
환불받은 돈으로 오뎅질을 하면서 이렇게 된 이유가 뭘까 한참 생각했었는데, 확신은 힘들었지만, 그 수업이 재미없게 느껴졌던 큰 이유는 ‘크로키’에 있었다고 잠정 결론을 봤었다.
처음 미술수업이란걸 들어보는데, 특징을 순식간에 포착해서 뚝딱 그려내야 하는 그 조급함이 내가 욕망던 느긋한 예술과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2년 후, 다시 시도.
어쨌거나 독학(이라고까지 하기엔 턱도 없지만)으로라도 그림공부를 시작했다.


책을 샀다.
학원에 다니는 정도의 노력까진 할 상황이 안되고, 드로잉에 관한 기본 책이라도 일단 읽어보면, 이 길도 동시에 걸어야 할 길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뭔가를 만날것 같았다.


백남원 이라는 분이 지은 <드로잉의 정석>.
서점 카테고리에서 별 기대 없이 대략 선택한 책.
그리고.
그 어느 소설보다 재밌게 휙휙 읽어내려갔다.

그림그리기 강의 책을 보고서 독후감을 쓸 계획은 전혀 없었는데, 이 책은 기꺼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 책은 단순히 그림그리는 기본 기술을 알려주는 차원을 넘어, 뭔가 인간적인 감동마저 주었다.
저자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무척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림을 처음 그리려는 사람에게 책으로나마 기초를 잡아주고, 비기너에겐 그 무엇보다 절실한 '그릴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 위해 굉장히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마치, 안팔려도 좋으니 진심을 전하겠다.는 의지마저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 책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함과 동시에 단번에 할 수는 없음을 거듭 강조한다.
‘영어 5주완성’ 따위의 책들이 출간되고 그게 실제로 가능할거라고 믿는건지 잘 팔리기까지 하는 세상에, 언어를 배우는것 보다는 훨씬 가능할것 같은 ‘그림 그리기’를 두고 그렇게는 안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 말이 절망이 아닐 수 있도록, 당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연이은 말 또한 얼마나 진중하고 다정했던지, 순간, 천부재능에서 그리기를 빼버릴 지경이었다.


머리말 서문의 맨 첫줄이 이렇다.
“드로잉, 한달 만에 완전 정복하기”
만약 이 책 제목이 저랬다면 무척 매력적이었겠죠? 하지만 가당치 않은 일입니다.


만일, 그림 그리는 구체적인 기술을 배워보려고 이 책을 구입한 나에게 이런 관념적인 이론만 늘어놓았다면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결국은 못마땅했겠지만, 여기선 정말로 드로잉의 ‘정석’이 될 만한 기본기들을 사물의 원리와 인간 심리마저 기초해 아주 설득력있게 하나하나 가르친다.
설명이 너무나 과학적이어서, 스토리를 가진 그 어떤 책들보다도 ‘아~~~, 우와~~~, 이야 그렇구나!, 아 맞다.., 그렇지!’ 를 자주 말하게 한 책이다.

올해 일주일에 하나씩 아무거나 그려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곤 몇번 실천해오는 중이었는데, 말씀대로, 무작정 많이 그리기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나름 괜찮은것 같다고, 소질이 보인다며 혼자 우쭐했던 그림이 엉터리로 보이게 해주었는데 기본이 쏙 빠져있어 이대로는 아무리 무턱대고 계속 그려봤자 발전이 더디겠단걸 진심으로 느꼈다.

책을 덮자마자, 선생님 뒷조사부터 해댔는데 웹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그분의 작품들에 역시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단순한 그림 ‘기술’을 넘어 감정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품은 그림들이었다.
정말이지 이 분 찾아가 수업을 꼭 한번 듣고 싶다.


성공적인 나의 첫 미술교과서.
아무렇게나 집어 든 책에서 원래 목적 밖의 다른 많은걸 한꺼번에 얻은듯하다.
나, 그림이 정말정말 그리고싶어졌어!!!



+ 예시로 들어있는 많은 작품들 중에 정말 감탄했던 한 작품. 나 정말 이런걸 그리고싶어ㅠㅜ
한수임 作


어쩜 저렇게 쉭~ 그린것 같은 할아버지가 저토록 감동일수가 있지!
양푼에 머릴 처박은 똥강아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느낄 수 있어!



+ 저자인 백남원 선생님 작품.을 찾아보다가 블로그를 발견했다. 유레카ㅋ
마구 가져다 실을 순 없다. 가서 보십시다~!
http://blog.naver.com/100none





+ 그리고 나름 자만했던 내 작품 -_-;; 쪽팔리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내가 그리고픈건 이렇게 고대로 옮기는 식이 아니었는데 다른 어떤 방법을 알 수 없었기에 무척 답답했다. 이제 이론으로나마 꽤 후련해졌고.



 

드로잉의 정석 - 10점
백남원 지음/성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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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도 그림도 욕심만 있지 어느것 하나 기본의 기본도 안 되있는 전..
    마냥 자책만 한답니다.
    '으이구 멍청아 이게 글이냐, 그림이냐?'
    그나마 악기는 계속 도전 중인데 점점 재미가 붙어 즐겁습니다. ^^
    님께서도 즐거우시기를!

    2011/03/07 23:04 [ ADDR : EDIT/ DEL : REPLY ]
    • 꺅! 제가 그림만큼이나 악기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셨군요!ㅠㅜ
      저는 피아노가...너무나;;;;
      생각나눔님도 화이팅!

      2011/03/08 17:44 [ ADDR : EDIT/ DEL ]
  2. tera

    헐..
    블로그 처음부터 읽어내려오다, 뭔가 볼게있어 스크롤바를 올렸다 내리는 순간, 순간 눈에 휙 꽂히는 단어
    '드로잉의 정석'?
    일생? 아마도;; 그림 그리는것에 관심만 있었지 실행하지 않았던터라 근래엔 미술학원을 다녀볼까..도 생각했었는데 님의 글속에서처럼 그러그러한 이유;;와 실행력부족;;; 등으로 머릿속에만 있었던 그 열망을 순간 확 불질러 주는 군요..
    당장 구매해서 봐야겠습니다.

    근데 댓글을 보곤 저랑 비슷한 점 발견.. 예술쪽에 관심이 많으신듯..
    저도 악기는 뭔가 하나 꼭 해보고 싶은데..
    악기를 멋지게 다루는 사람들을 보면 참, 뭐랄까.. 부러움과 아름다움까지 느끼는데..
    우리딸은 꼭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되길 바라는 아빠로서
    합주를 하려면 저도 뭔가를..; 흠;
    한때 트럼펫이 멋져서 없는 돈에 중고를 사서 혼자 열씨미 연습해 터득한 도레미파솔라시도 내기 -_-;;;(덕분에 입술에 둥그런 피스 자국으로 입술이 두툽해지는 부작용이 ㅠ.ㅠ)
    이젠 어디로 갔는지 그 흔적조차 모를 내 트럼펫;;;;;ㅠ.ㅠ;
    전 플룻을 배워볼까..하는;; 쿨럭; 뭐든 끝을 잘 못보는 요놈의 성격때문에 전 저 자신을 이기는 순간, 그때가 제대로 악기를 다루게 되는 때가 되지 않을까..생각해 봅니다;

    2011/08/19 13:25 [ ADDR : EDIT/ DEL : REPLY ]
    •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_^
      저도 이것저것 하고싶은것만 넘쳐나고 하나를 진득하게 하질 못하는게 저주스러운데ㅋ 그래도 tara님은 저보다는 실천력이 훨씬 강하신것 같아요. 우짜든동 화이팅입니다ㅋㅋ!

      2011/08/21 14:20 [ ADDR : EDIT/ DEL ]
  3. tera

    다음에서 드로잉의정석 으로 검색해 보니 이 포스트의 그림들이 뜨네요 ㅎㅎ(물론 알고 계시겠지만..)

    2011/08/19 13:34 [ ADDR : EDIT/ DEL : REPLY ]
    • 헉! 제 졸작도 뜬다는 말씀이시군요.. 우짜쓰까ㅠㅜ

      2011/08/21 14:20 [ ADDR : EDIT/ DEL ]

BOOK2011/02/28 11:44

벌써 일년이다.
아... 새털같은 시절은 세상 아무것도 상관없이 흐르고.

자세한 내막을 알것도 없이
지금 길상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큰스님께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너무나 슬픈
큰스님 1주기다.

죄송해요...죄송해요..



미리 쓰는 유서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라도 첨부되어야겠지만, 제 명대로 살 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므로, 유서에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라도 나를 쏠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육신으로서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당해서도 실제로는 유서 같은 걸 남길 만한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편집자의 청탁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것이다.

누구를 부를까? 유서에는 흔히 누구를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설사 지금껏 귀의해 섬겨 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이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서 왔고 갈 때도 나 혼자서 갈 수밖에 없다. 내 그림자만을 이끌고 휘적휘적 삶의 지평을 걸어왔고 또 그렇게 걸어갈 테니 부를 만한 이웃이 있을 리 없다.

물론 오늘까지도 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과 서로 왕래를 하며 살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생명 자체는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것이므로 인간은 저마다 혼자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보랏빛 노을 같은 감상이 아니라 인간의 당당하고 본질적인 실존이다.

고뇌를 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베토벤의 음성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의 선의지 이것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저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이웃의 선의지에 대해서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저지른 허물을 참회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을 것이다.

때로는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다. 허물이란 너무 크면 그 무게에 짓눌려 참괴의 눈이 멀고 작을 때에만 기억에 남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지독한 위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평생을 두고 그 한 가지 일로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문득문득 나를 부끄럽고 괴롭게 채찍질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동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엿장수가 엿판을 내려놓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그 엿장수는 교문 밖에서도 가끔 볼 수 있으리만큼 낯익은 사람인데 그는 팔 하나가 없고 말을 더듬는 불구자였다. 대여섯 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가락을 고르는 체하면서 적지 않은 엿을 슬쩍슬쩍 빼돌렸다. 돈은 서너 가락치밖에 내지 않았다. 불구인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이 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가 만약 넉살 좋고 건강한 엿장수였더라면 나는 벌써 그런 일을 잊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장애자라는 점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자책은 더욱 생생하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에는 용서받기 어려운 허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에서인지 그때 저지른 그 허물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쫓고 있다.

이 다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며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 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때 한 인간의 순박한 선의지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 만한 것이다.

"날카로운 면도날은 밟고 가기 어렵나니, 현자가 이르기를 구원을 얻는 길 또한 이같이 어려우니라."
<우파니샤드>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내가 죽을 때에는 가진 것이 없을 것이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본래무일물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 관념이다.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 하고 나를 찾아 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술 더 떠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평소의 식탁처럼 나는 간단명료한 것을 따르고자 한다.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가운 빗돌 대신 어느 여름날 아침에 좋아하게 된 양귀비꽃이나 모란을 심어 달라 하겠지만, 무덤도 없을 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 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 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 버린 헌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을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다비해도 무방하다.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은 나는 절대로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없을 것이므로 한번 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수행자가 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1971



스님 서른여덟에 남긴 이 글.. (<무소유> 中)
일년 전 남긴 유서와 다를바 없다.
다짐을 모두 실천하신 스님과 달리
남은자들은 무엇인가.


죄송해요.
그리워요.



큰스님의 뜻 잊지 않기 위한
책장의 작은 한칸.
이 마저도 모두 부끄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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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냥그냥

    오늘자(3/2) 동아일보 문화 전문 기자(?)가 쓴 길상사 관련 기사가 있습니다.
    길상사 문제에 관한 글인듯 싶습니다. 소설인지 사실인지는 모르겠고
    하지만 욕심없는 평범한 사람이 그분의 뜻을 이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2011/03/02 13:31 [ ADDR : EDIT/ DEL : REPLY ]
    • 읽어봤는데 안읽은게 나았다 싶네요. (아,,오해하실라. 알려주셔서 감사해요.정말로요) 스님의 투병과정을 묘사한건 가슴만 더 아프게 하네요.정말 미치겠군요;;
      글쓴이의 스님과의 친분을 강조하며 묘하게 거들먹거리는 뉘앙스도 왠지 비호감이고요.왠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일것 같고요.(신문사가 비호감이라서 더 그런가;;; )
      그것보다도, 상좌들과 주변인들의 욕심, 잘잘못 등등 자세히 아는것도 무의미한것 같아요. 덕현스님에게서 법정스님의 모습을 봤던터라 그분의 떠남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거라고 애써 이해하고픈 맘이 약간 들지만, 그것도 다 부질없는것 같고요.
      스님이 살아돌아오실 것도 아니고 상황을 이따구로 만든 모든 사람이 스님께는 다 죄인이다 싶네요. 아직도 변함없이 탐욕스러운 저도 똑같이 부끄럽습니다.
      부디 스님께서 평범한 독자들의 사랑만은 진실이란걸 알아주시고 조금이라도 덜 노여워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스님 안계신 길상사.. 욕심으로 가득찬 길상사.. 이제 그만 오랜 발길 끊고 싶다는 생각만 듭니다.
      정말 슬프네요.

      2011/03/02 14:19 [ ADDR : EDIT/ DEL ]
  2. 로영

    제 맘도 그래요. 신문기사도 썩 반갑지 않았고 길상사 스님들도 나름 사연이 있을거라 생각되어 맘이 안좋아요. 그래도 길상사는 여전히 아름다울테니 발길 끊지말고 마음 추스르길 바래요. 저 역시 그러려고 하고 있으니...

    2011/03/04 02:17 [ ADDR : EDIT/ DEL : REPLY ]
    • 아...로영님..
      말씀보니까 또 울컥합니다, 휴...
      작년겨울, 큰스님 가신 후로 정말 오랜만에 맘잡고 갔던, 로영님과의 인연도 생겼던 그 길상사에서 그나마 덕현스님에게서 위안 얻고 희망도 보았었는데 정말 지금으로선.. 아휴..
      애쓸게요;;; 감사합니다 아휴,,,

      2011/03/04 10:15 [ ADDR : EDIT/ DEL ]

BOOK2011/02/15 22:15

언젠가부터 후입선출식 독서생활을 하고 있다.
세권씩 사서 마지막 것을 시작할때에야 다음 주문을 하던, 꽤 오래도록 견고했던 룰이 깨지게 된 후로
책을 고르는 즐거움, 택배 상자를 받아드는 즐거움에만 취해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심하다.
그렇게 책이 하나둘 쌓이면서 당장 욕구가 일어 산 최근 책이 먼저 보이다보니 그리 되고 말았다.
올해 계획으로, 이런식으로 쌓여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삘받아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70권을 다 없앤댔던 사자후가
구호에만 그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자.




짜증나는 '세계적인' 소설을 황당해하면서 하나 훌렁 읽고
그 보상심리루다가 연이어 집어들었던 소설이다.

포크너의 대표작이지만 전혀 모르던 작품이었다.
책을 살때마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낱개로 하나둘씩 끼워넣어 모으는 재미를 만들고 있는데, 그 중 그저 제목에 반해서 일찍 간택한 작품이다. 그만큼 눈을 잡아끄는 섬뜩한 제목이다.
(세계문학전집을 이런 방식으로 갖기로 하고는 경험상 믿을만한 출판사 몇군데 비교해보았는데, 결국 민음사껄로 하기로 한건 그저 표지 디자인이 차분해서였다. 이것도 어느새 한 20권 모은것 같다. 한권씩 사서 전집을 완성하는것.. 생각보다 더 많이 즐겁다.)


이 작품은 여러가지로 놀랍다.
죽어있는 '나'의 시점인 제목부터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데다 구성이 이제까지 읽은 책 중 손꼽을 정도로 독특한데,
언뜻 이상한 분량으로 조각조각 나뉜 챕터들에 의아해하면서 꽤 많이 진행될때까지 화자의 시점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초반엔 대체 "나"가 누구인지조차 파악하기가 힘들어서 등장인물도 너무너무 많게 느껴진다.
그렇게 앞장을 계속 뒤적이며 힘겹게 넘기다 갑자기 전부 이해되는 순간이 오는데, 그렇게 한번 놀라고, 게다가...알고보니 전혀 복잡할 게 없었다는 사실까지 깨닫게 되면서 가장 독특한 소설로 각인된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엄마의 죽음을 맞게 되고, 고향인 제퍼슨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무더위 속에 마차에 관을 싣고는 온갖 난관이 가득한 40마일을 융통성이라곤 없는 방식으로 이동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이 단순한 줄거리를 이루는 것은 남편과 다섯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시선과 그들의 독백들인데, 이 점이 이 작품을 완전히 색다른 경지에 올려놓는다.
이 15개의 시선, 59개의 독백에서 그들 각자의 진심과 비밀들이 밝혀진다.
특히 죽은 엄마인 '애디'의 독백은 단 하나 나오는데, 나는 정말이지 충격받았다.

전체적으로 매우 어둡고 음침하고 축축하고 시종 죽음의 기운속에 우울하고 부조리하며 답답하고 깝!깝!하고;;;;
등장 인물들의 독백은 난해해 죄다 정상이 아닌것 같고 메타포 가득한데, 포크너의 실험적인 문장형식까지 더해지면 정신이 완전히 헤집힌다.
글씨체를 바꾸기도 하고 문장 중에 의도적인 공백을 넣는 등 정말 요상한 시도들을 하는데, 가히 영화 입문시절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마지막 장면의 형식파괴에서 받았던 충격 비스무리하다.
분명하고 어렵지 않으며 심감나는 스토리를 가졌음에도 정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법한 작품이라는게 신기하고 실제로도 그렇다.

역시 작가 개인의 삶은 작품에 투영되기 마련이란걸 느끼면서 위대한 작품을 남기려는 작가는 그에 필요충분한 괴상한 삶도 기껍게 받아들여야한단 생각에 이르니, 언젠가 뭔가를 시도해보고픈 나는 행복하고도 슬프다. 이미 그런 삶을 쌓아왔는지 모른단 생각에 말이다.
작가가 되기 전 우체국장 시절의 윌리엄 포크너는 남의 우편물을 훔쳐보는 취미가 있었다 하고, 축축한 늪지를 다니는 보트를 타고 술을 밀수하기도 했단다.
적어도 이런 기행들이 이 작품에 조금의 흔적이라도 남겼음이 분명하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 8점
윌리엄 포크너 지음, 김명주 옮김/민음사


+ <400번의 구타> 엔딩


주인공이 갑자기 카메라를 응시함.
누구든 저 눈빛을 3일동안 잊을 수 없게 됨.

스샷 출처 : http://ilestcinqheures.wordpress.com/2009/04/07/the-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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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02/20 05:27 [ ADDR : EDIT/ DEL : REPLY ]
    • 요새 이렇게 삽니다;;라는 말로 압축을T.T

      혹시 삶이 남들보다 좀 팍팍하다 싶더라도 이게 다 걸작을 남기기 위한 덤이라고 애써 생각을.. 저는 그러구있어요ㅋ

      2011/02/23 09:58 [ ADDR : EDIT/ DEL ]

BOOK2011/01/09 16:59


아 어떡하지;;;;;
음. 일단. 암튼..



이 작품은, 문화혁명기 중국을 배경으로 피를 팔아 살아가는 가장 ‘허삼관’의 이야기다.
이 말 하나만으로도 뭔가 뜨거운것이 올라올 만하다.
단 몇작품으로 세계가 사랑하는 중국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는 ‘위화’의 작품.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아버지의 모습, 가족에게 닥치는 고비들을 그때그때 큰 돈과 바꿀 수 있는 ‘매혈’로 버텨가는 가난한 아버지의 이야기.
이 아버지는 피를 팔기 전 양을 불리기 위해 차가운 얼음물이라도 몇 대접씩 배가 터지도록 마시고(과학적으로 따지진 말자),
피를 팔고나서야 겨우 돼지간과 황주 두냥을 먹을 자격을 스스로에게 주는 사람이다.

허삼관은 거친 입으로 내내 육두문자를 내뱉지만 언제나 그건 말에 그칠 뿐 마음은 더없이 여린 남자이며, 세 아들 중 자기 자식이 아니란게 밝혀진 장남을 위해서까지 목숨을 걸고 피를 파는 사람이며, 가족끼리도 비판투쟁대회를 열어야했던 그 시절 어머니의 부정을 부끄러워하며 비판하는 자식들에게 자신의 부정을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아내를 보호하는 남편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런데, 작가는 이 ‘허삼관’을 흠결없이 존경할 만한 어쩌면 비현실적인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리지만은 않는다.
그는 장남 일락이가 자기의 자식이 아님을 알고 피를 팔아 가족에게 국수를 먹이러 가는 길에 일락이만 버리기도 하고, 바람 피운걸 덮기 위해서도 피를 팔며, 두 아들에게 자라서 장남의 친아버지네 두 딸을 강간해버리라는 말도 하는 등, 비루한 모습도 함께 가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하나로 그리는 것이다.


줄거리만 보면 더이상 신파적일수가 없는데 이 모든 가슴절절한 이야기들을 심각하지 않게 해학적으로 표현해내는 위화의 스타일은, 우리에게 희극적으로 표현된 비극이야말로 가장 진한 눈물을 남길 수 있음을 일깨운다.

피는 극단적이다. ‘매혈’은 그 어떤것 보다도 극적인 소재가 된다.
몸이 아픈 장남 일락이를 위해, 한번 매혈 후엔 적어도 석달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규칙따윈 무시한채 도시를 옮겨다니며 피를 파는 모습은 부모의 위대함을 단숨에 대변해버린다.
허삼관은 자신의 피를 죽은피라며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노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피를 팔러 간다.
이 마지막 장면은 이 소설의 마무리로 성공적이다.


이상. 여기까지가 이책을 읽는동안 머리로 이해하여 스스로에게 강요한 감상이다.

이런 감상으로 감동하여 그 시절 중국을 상상해보고 내 아버지를 생각해보고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등등. 그래야 한다는걸 머리론 알겠다.

그런데.
한마디로 이 책이 정말 재미없었다.
몇시간에 끝냈으니 진도는 정말 빠른데 짜증이 많이 났다.
솔직하게 말해, 감동도 거의 없었다. 허삼관의, 문자 그대로 피나게 고단한 삶에서 연민과 감동을 느껴야 하는거라면, 내 아버지도 그 정도의 고단한 삶은 사신 분이라고 말하겠다.

말했듯이, 피는 극단적이라 이 소설의 제목만으로 구매욕을 당기는 충분한 역할을 한다.
허삼관이 판 것이 피가 아니었다면 그 외엔 남아있을게 없다. 스토리는 취향이 아니지만 필력이 훌륭하다던가 이루는 에피소드는 마음에 안들지만 전체적으론 큰 메시지를 남긴다던가 말이다.

중국 사람들을 그린 작품들 특유의 시끌벅적한 스타일이 내겐 정말 맞지 않고, 이 작가의 작품이 처음이라 싸잡아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사람의 글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해학적이라고 하는데, 그런 해학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휴머니즘은 약간 느꼈음ㅋ) 유머는 유치했으며 (아니, 세 아들의 이름이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라는것에까지 폭소를 터뜨려야 한다고 강요한다) 표현력에서도 세계적인 글쟁이의 힘은 (중국어를 마스터해 원문으로 읽지 않는 이상)전혀 느낄 수 없었다.
(건방지게도, 나도 소설 써야겠다!는 용기를 얻기까지 했다능;;;)


이럴때 참 혼란스럽다.
하나같이 감동받았으며 울다웃다를 반복했다는 감상들 뿐인데, 내겐 무슨 문제가 있는걸까?하하하;;;

허삼관 매혈기, 제목 참 훌륭하고 표지도 예쁘다.
이 책 읽으면서 짜증이 왕창 났다는 사람을 만나 돼지간을 안주삼아 황주를 마시고 싶다.


+ 장이모의 <인생>이 이 작가의 전작을 원작으로 했단다. 허삼관 매혈기도 영화로 만든다면 연출자의 역량에 따라 이 텍스트와는 크게 다를 수 있겠다는 느낌은 든다.


허삼관 매혈기 - 2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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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ㅎㅎ 남들은 감동받았다는데 기대에 차지 못한 작품이었나보네요...
    맞습니다.. 재미없는걸 어쩌라고..ㅋㅋ
    저도 소 나오는 영화를 보고 악평의 리뷰를 쓰려다 관뒀다는... 악플이 무서워서..ㅋㅋ

    2011/01/09 20:59 [ ADDR : EDIT/ DEL : REPLY ]
    • ㅎ네, 대세를 따르지 않으면 다구리 당하곤 하는 일들이 실제로 생기다보니 이런 사소한 독후감 하나에도 용기가 필요하네요ㅋ 감사해요~ (소영화 악평 궁금해지네요^^)

      2011/01/10 13:25 [ ADDR : EDIT/ DEL ]
  2. 로영

    오래 전에 읽었는데, 읽을 땐 술술 읽히지만 별 느낌이 남아있는 작품은 아니에요
    구구절절 해학적, 신파적이란 표현이 정확하다고 봐요.

    2011/01/14 14:35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녕하시죠?뵐때마다 반가워요ㅋ)
      한표 얻은거죠?^^ 위로가 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1/01/14 23:20 [ ADDR : EDIT/ DEL ]
  3. 더든

    책에 대한 비평은 본인의 인생관이나 경험에 비추어 감동적일 수도 있으며 그냥 그저그런 책일 수도 있죠.
    또한 책에 얼마나 많은 기대를 했냐에 따라서 작품에 대한 감상평은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발견한 파도타기를 통해 발견한 블로그에서 제가 읽은 책에 관한 리뷰를 보고 잠시 리플을 달아봅니다만, 본인이 재밌게 읽지 않으셨다니 아쉽군요 . 그저 뻔한 해학적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하루하루를 지나치게 복잡하게 세상에 대한 고민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에게는 책을 읽는 동안 그저 즐거움만 남을 뿐이었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되세요

    2011/03/02 22:41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말씀 감사합니다.
      제 얘기도 그겁니다. 작품에 대한 감상은 사람마다 제각각일 수 있고 그게 자연스러운거라는 거지요.
      다만, 본문에 썼다시피 이 작품은 (제목에 낚여서 은연중에 지나친 기대를 했을수도 있겠네요) 제게 전혀 '해학적'이지 않았어요. '해학'은 주로 좋은 뜻이지요. 그리고 스토리보다는 표현의 문제였고요. 피를 파는 삶이나 혁명기 소시민의 삶을 들여다본 스토리가 그리 뻔하지는 않죠.
      저도 하루하루를 나름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어서, 주로 현실도피 목적으로 책을 읽는데, 좀 '제대로' 웃고 감동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더든님과 의견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레알!

      2011/03/03 09:27 [ ADDR : EDIT/ DEL ]

BOOK2011/01/09 12:02


G20 포스터 변주 작품에 적절히 쓰여 감동적이었던 쥐캐릭터 덕분에 책장 깊숙이 있던 만화책 두권이 생각나 꺼내봤다. 물론 그 쥐와는 완전히 반대의 입장을 대변하는 쥐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30쇄를 넘긴 유명한 만화책.
만화라는 형식의 가치를 극대화한 대작.
만화에 대한 편견을 확실히 뒤엎은 작품.
만화작품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작.
미키마우스와 동시대에 태어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약한 또하나의 쥐 캐릭터.
두껍지도 않은 두권을 완성하는데 바친 13년.


이 책에서 아트 슈피겔만은 유태인을 쥐로, 나치를 고양이로 표현하여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것에 더해 그 끔찍한 경험이 만들어놓은 아버지의 강박과 피해자인 아버지가 지닌 모순까지도 그대로 드러내며, 어렵게 살아남고도 결국 자살한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상념, 아버지와 융화하지 못하는 전후세대 자신의 갈등과 고뇌도 고백한다.

나치와 유태인 외에도 폴란드인은 돼지, 미국인은 개, 프랑스인을 개구리의 모습으로 등장시키는데.
음.. 이건 단순한 의인화가 아니라 당시의 현실을 살아낸 사람들은 모두 인간의 삶을 살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정말 적절한 환유가 아닐 수 없다.


아버지 블라덱이 학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는 과정도 그 어떤 영화적 재현보다 강렬하며, 증언을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 거친 필치의 독특한 흑백 그림체가 이제까지의 그 어떤 매체보다 더 끔찍한 실감을 남긴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큰 줄기로 하여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 전달할지에 대한 고민을 그대로 드러내고, 학살로 희생된 형에 대한 표현할 수 없는 경쟁심과 죄책감, 어머니의 자살이 남긴 상처를 Prisoner of the hell planet 라는 또다른 짧은 만화로 고백하는 아트 슈피겔만에 완전히 동화된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도 희생자의 그것에 못지 않음을, 전쟁의 상흔이 당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전해지는 상처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다양한 각자의 관점을 취한 나치와 유태인,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영화와 책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솔직하고 적나라한 고해를 하는 작품이며, 정보없이 접하게 된 누구에게라도 표지에서부터 뭔가 잊기 힘든 충격을 남기는데다, 들춰보고 만화라는걸 아는 순간 더욱 섬뜩한 호기심을 잔뜩 안겨줄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은 여러면에서 한마디로 대단한 인물이다.
블라덱이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과정엔 영웅 따윈 없다. 그저 감탄스럽도록 영리하게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고 자신이 가진 재능과 재물을 뇌물로 사용하면서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은 대단한 사람이다. 연이어 닥치는 죽음의 단계를 어떻게 피해가는지를 목도하는 일은 정말 감탄 자체다.
모든 인간이 지닌 생존 본능을 바탕으로 정말이지 무섭도록 똑똑하고 섬뜩하도록 경제관념 투철한.. 오늘날 우리가 유대민족에 가지고 있는 그런 인상들(이것 역시 또하나의 편견이겠지)의 집합체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반전의 충격을 남기는 장면. 블라덱이 흑인에게 보이는 인종차별적 모습이다. 그들 스스로 지독한 피해자이면서도 다른 민족을 고스란히 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그들의 모순까지 고백하는 순간 이 작품의 가치가 완성된다. 이 모든 창작의 과정에서 아트 슈피겔만의 고뇌와 심상이 얼마나 컸을지 왜 이토록 긴 세월이 필요했는지 설명된다.



매순간이 클라이막스인 아버지의 생존투쟁에 몰입해 긴장을 더해가며 책장은 순식간에 넘어가는데 기분은 몹시 나쁜,
더 신랄한 그때의 경험을 듣고 싶으면서 동시에 책이 빨리 끝나 이 먹먹한 찝찝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두가지 감정이 뒤섞인다.
보는동안 괴롭고 힘든, 하지만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또하나의 사실적인 고발임은 기본, 인종을 막론한 인간의 잔인함에 부끄러워지고, 끝난 전쟁의 끝나지 않는 상처를 바로 내 일처럼 상상해보게 하는 끔찍한 걸작이다.












“만일 내 작품이 독자들에게 충격을 준다면, 그건 만화에 실릴 수 없다고 생각되던 내용이 실려있기 때문일 거예요. 만화라는 장르에 포용할 수 없다고 간주되던 사고 방식 말이에요.” – 아트 슈피겔만



쥐 I - 10점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아름드리미디어


쥐 II - 10점
아트 슈피겔만 지음/아름드리미디어



+ 다음 이 시간(?)에는 이 작품과 셋트로 비교되곤 하는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를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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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01/16 06:24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정말 넘넘 바빠서 블로그 들여다볼 몇분도 없었어요ㅠ)
      처음엔 단순하게도 그림실력은 별로네 따위로 생각했는데, 결국 이 책엔 저 거친 그림체가 딱이고 일부러 저리 선택했다는걸 느끼게됐죠.
      아트슈피겔만이 다양한 그림체를 구사할줄 아는걸 보고 더욱 대단해보였어요.
      책 쭉쭉 읽자고요~ㅋㅋ 저도 노력중이에요!

      2011/01/18 11:27 [ ADDR : EDIT/ DEL ]
  2. 작가는 그 많은 동물중에 딱 쥐를 골랐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2011/03/07 23:12 [ ADDR : EDIT/ DEL : REPLY ]
    • 흠, 이것이..
      책을 보면 참 적절한 선택이라는 느낌이 좀 옵니다.
      독일인은 고양이로 표현되는데, 일반적인 '쥐 잡아먹는 고양이' 그 이미지는 기본인데다, 고양이와 함께 생각지 않고 쥐만 따로 떼서 보면 상대적으론 약한 존재이면서도 그 혼자는 또 영악하고 재빠르고 약삭빠른 이미지를 가졌죠.
      그 외의 주변 나라들을 대신하는 동물들도 희한하게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답니다~^^

      2011/03/08 17:49 [ ADDR : EDIT/ DEL ]

BOOK2010/12/22 09:21


음.. 사람들이 많이 찾는 블로그가 되려면  순간적으로 확 유행하는 신간들을 좀 낼름 읽고 미끼를 팍팍 던져야 하는건데, 이거 뭐.. 포스팅 하고싶은 책은 거의가 절판 또는 1년이상 품절ㅋ
신간들이 출판사,서점들과 짝짝꿍해 쏟아붓는 폭격 마케팅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피하고 있으니.ㅉㅉ
결국 진정한 걸작은 대중의 관심이 한풀 꺾인 다음에 자연스럽게 낭중지추로 우뚝 설 것이라고 강하게 믿기에.
그리고 절판이 될똥말똥한 시점에 처해있는 진정한 명불허전書들을 찾아내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여ㅠ 매번 이렇게 뒷북을 치고 있다.
블로그 뜨긴 글렀단거지.

암튼, 그렇거나말거나
6년전에 읽은;;; 놀라운 책을 하나 (이제와서)소개한다. 물론! 절판이다! (중고샵에 몇권 있음)


이거 하나면 우린 액션 영웅이 될 수 있어요.
이 책을 손에 들고 다니면서 위험에 처할때마다 잽싸게 참고하면, 비행기에서 놈이 하나 남은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렸대도 그 위에 올라탈 수 있고, 감옥에 잘못 수감됐다 하더라도 문제없이 탈출할 수 있으며, 달려오는 차로부터 누군가를 간단히 구조해낼 수도 있어요.
진짜에욤!

 

 

 

 






목차를 한번 보자.
닥친 상황에서 재빨리 해당부분을 찾을 수 있으려면 목차를 숙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1. 영웅의 기본기

호텔방 점검법
범죄현장 조사법
지문 채취법
탈주범 잡는법
용의자 심문법
감옥에 잘못 수감되었을 때 살아 나오는 법
백상어 사냥법
악당처치 확인법
응급환자 처치법
버스 고속 주행법
인질극 협상법
총알받이 되는 법
달려오는 차로부터 누군가를 구해 내는 법
조난자 구조법

2. 사랑의 기술

결혼식 중단시키는 법
더티댄싱 추는법
사랑의 묘약 제조법
술집에서 상대를 꼬시는 법
서로 끌리는 마음을 광란의 밤으로 이끄는 법

3. 초능력 나타내기

외계인과 대화하는 법
죽은 자와 만나는 법
유령 쫓아내는 법
미래를 읽는 법
제다이의 심령술
불칸식 신경 찌르기
 4. 결투술

세계 챔피언 선수권대회를 위한 훈련법
내려쳐지는 의자 맞는 법
총싸움법
전천후 대비법
수적 열세에 몰렸을 때 대비법
총 빼앗는 법

5. 탈출 기술

미그기 피하는 법
재진입 단계에서의 우주선 수리법
탈출로 확보법
고속으로 쫓는 차 따돌리는 법
속보로 따돌리는 법
낙하산 무임승차하는 법
창문에 뒤어드는 법
수갑 벗는 법
환기갱 통과법
가라앉는 배 빠져 나오는 법
마운틴 러시모어 내려오는 법


놀라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이거면 이제 세상 두려울것이 없다.


절판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내용을 조금 소개한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다 해도 이 장에서 익힌 기술들이 있는 한 당신은 살아남을 수 있다.

라는 말로 1챕터를 시작하고 있다. 정말 믿음이 간다.



<호텔방 점검법 中>

현실은 영화가 아닌지라 침입자가 거의 벌거벗은 요부나 뭔가 흥분되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브래드피트 유형이기를 바라기는 여간 무리가 아닐 수 없다.(물론 아주 가끔은 그럴 수도 있으니 비관하지는 말자)

방을 나갈때는 다음과 같은 간단하지만 효과좋은 방법을 쓴다.
- 중요한 서랍이나 문을 연다. 문틈에 접은 성냥을 끼우고 닫는다.
-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문과 문틀을 가로질러 뻗친 후에 침을 많이 발라 붙인다.
이들 중 어떤 것이라도 떨어지거나 움직였다면 누군가 들어왔었다는 것을(아니면 아직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감옥에 잘못 수감되었을 때 살아나오는 법 中>

1. 웬만하면 탈출을 시도하지 마라.
오로지 생명과 자유세계의 미래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만 탈출을 시도해야 한다.
3. 감옥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범죄자로 생각하도록 만들자.
기대하라, 당신은 감히 다른 수감자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된다.
4.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 하라.
안타깝게도 경외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면 무사히 살아서 나가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해라.


<인질극 협상법 中>

7. '그 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다.
절대로 '인질'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 단어는 범인을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8. 그가 버스를 원한다면, 크기는? 전세버스? 담배라면, 브랜드는? 필터 있는것 아니면 없는것? 라이트? 아니면 울트라라이트? 레귤러? 이런식으로 시간을 끌어서 상대를 지치게 하자.
한편, 상대가 무언가를 요구하면 지휘관과 의논해 보겠다고 하자. 당신이 해줄 수 없는 것은 순전히 지휘관 때문이라는 것을 항상 주지시킨다. 그러면 그는 당신과 한편이 될 것이다.


<총알받이 되는 법 中>

7. 총알을 맞는다.
무게중심을 뒷다리에 두고 다른 다리로 총알을 향해 걸어나간다.

부록. 총알 피하는 법.
총알이 발사되면 지그재그로 달려 도망가라.


<달려오는 차로부터 누군가를 구해내는 법 中>

위험한 순간에 처하게 되면 인간은 머리속으로 번개처럼 빠른 계산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문제는 과연 몸이 마음에 따라주느냐이다.


<결혼식 중단시키는 법 中>

결혼식을 멈추려면 "서약하시겠습니까?" 부분 전에 해치워야만 한다.
경고 : 상대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혼자서 문을 나오게 될 수도 있다.


<더티댄싱 추는 법 中>

사람들 앞에 나서기 전에 집에서 먼저 연습한다.


<외계인과 대화하는 법 中>

우선 지구에 온 어떤 E.T 라도 당신보다는 뛰어나다는 것을 명심하고 시작하자.당신이 더 우월하다면 E.T를 방문했을테니까.



<유령 쫓아내는 법 中>

1. 유령과 대화를 시도하라.
2. 유령에게 떠나라고 하라.
3. 만일 유령이 떠나지 않으려고 한다면 강신술을 통해 저승의 도움을 청하라.


<내려쳐지는 의자 맞는법 中>

나무의자인 경우 :
절대로 몸을 돌려 등으로 받아내지는 말라.
철제의자인 경우 :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피해야만 한다.


<전천후 대비법 中>

저 작고 친절한 할머니가 언제 라텍스 가면을 벗어던지고 당신을 칠지 누가 알겠는가?
육탄전에서는 손가락으로 눈을 후비거나 목을 쳐서 적을 빨리 기절시켜 싸움을 빨리 끝낸다.


<수적 열세에 몰렸을때의 대처법 中>

앞에 세사람이 있다면 "비키시오!" 라고 말하면 동시에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도망갈 구멍을 만든다.



<탈출로 확보법 中>

1. 역에서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가 바로 내려온다.
누군가도 똑같이 그런다면 그는 당신을 쫓고 있는 것이다.
2. 기차가 막 떠나려고 하면 플랫폼으로 뛰어내려라. 이때 누군가가 따라 뛰어내린다면 그가 당신을 쫓고 있기 쉽다.
6. 기차표가 없어서 걸리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써서 위기를 모면하자.
자는 척하기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척하기


<마운틴 러쉬모어 내려오는 법 中>

1. 제퍼슨 대통령의 머리카락 아래에서 귀 왼쪽으로 내려온다.
2. 워싱턴 대통령의 턱으로 천천히 내려오자.
3. 워싱턴 대통령의 턱 아래에서부터 제퍼슨 대통령의 목을 가로지른다.
4. 나무 바로 위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링컨 대통령 사이의 비탈에 도달한다.
주의 : 만일 내려오는 동안 떨어지게 된다면 몸의 힘을 뺀다. 충격흡수로 부상을 줄일 수 있다.



정말 놀랍다. 이제 이 책을 들고 미그기를 타고 마운틴 러쉬모어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작은 핸드북 하나를 만들기 위해 실제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엄청난 정보를 줬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를들면, 25년간 거의 300만 킬로미터를 버스로 운행한 합동운송연합 사고위원회의 회원이었단 밥 타이리 씨.
개업 마녀이자 전문 점성가,마법단체의 대변인으로 둔갑술에 관한 20권이 넘는 책의 저자인 제리나 던위치 씨. 섹스 전문가인 캐롤 퀸 박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최면술사로 알려진 스펜서 씨. 총 빨리뽑기 세계 챔피언인 하워드 다비 씨 등등이다.
정말 감사하다.






이 책이 진정 사랑스러운건,
자기혼자 엄청 진지하기 때문이다!!!!!!!!!!!!!!!!!


정말 정말로 엄청나게 귀여운 실.용.서.적.이다! 그 진지한 설명과 삽화에 배꼽이 사라진다.


+ 작가인 데이비드&닉 보르게닉트 형제는 감사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감사를 전하고 있다.
다음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중략)
아울러 출판사의 모든 분들 -이 책은 말도 안된다고 하셨던 분들 빼고- 감사합니다.




이런 책이 당당히 출간될 수 있는 사회,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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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웃어요~

    아침부터 혼자서 피식거리면서 웃었네요~^^
    목차중 '사랑의 묘약 제조법' 끌리네요~ 공유 부탁드립니다~

    2010/12/23 10:08 [ ADDR : EDIT/ DEL : REPLY ]
    • 하핫;; 네 이따 집에가서 묘약제조법 배껴드리께요ㅋ
      (기억나는게.. 그 마법을 다시 풀어야할때는..묘약제조법을 역순으로 하면 된다고 하데요ㅋㅋㅋㅋㅋ)

      2010/12/23 13:08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