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2010/03/15 16:44



우리 큰스님.


비가 옵니다.

스님을 사른 불이 사그라들자 제 눈물을 잇는 비가 옵니다.
길지 않은 제 인생에 스님이 함께하시는 동안
스님을 뵙는것도, 소식을 듣는것도 참 어려웠는데
스님이 돌아가시고서야 스님의 소식을 알리는 온갖 사진과 기사들이 쏟아집니다.

벌써 닷새째입니다.
지난 닷새동안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느낌에 모든 일에 활기가 없습니다. 울컥 솟는 눈물에 혼곤함을 가눌 수 없습니다.
법회에 좀더 꼬박꼬박 나갈걸.. 말씀 한마디, 눈빛 한조각이라도 더 마음에 담을걸… 늦은 후회뿐입니다.



내 자신과 부모님 외의 다른 존재에게 마음으로 의지해본 적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10여년 전, 지금껏 제 삶에서 겪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우연히 스님을 알았습니다.
순간의 고통도 우주속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제 인생을 관조하게 하는 말씀이 너무나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오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길상사를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정보가 없던 시절, 물어물어 찾아간 길상사 앞에 섰던 한겨울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스님이 오시는 법회에 처음 섞여 함께 할 날을 기다리며 가슴뛰었던 그 날들도 잊히지 않습니다.
스님을 눈 앞에 뵙고 그 동안의 삶의 짐을 내려놓는 기분에 울먹였던 그 푸른날이 생생합니다.
그 후로도 찾아온 두번의 방황.. 그때마다 눈물을 쏟았던 길상사 법당엔 스님의 인자함이 가득했습니다. 가까이에 뵙지 않아도 스님은 제게 너무나 큰 존재였습니다.
길상사 나무아래 돗자리 깔고 솔바람 쐬며 앉아 읽던 오두막편지도, 텅빈충만도…무소유도… 스님이 안 계신 지금엔 그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하루하루 바삐 살아간단 핑계로 자주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남아있을 길상사와 큰스님인줄만 알았습니다.
몇해 전 오랜만에 찾은 법회에서 부쩍 늙으신 스님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늙으시는게 어찌나 야속했던지 ‘아 왜저렇게 늙었어..’ 원망하는 말을 가시는 스님 뒷모습에 중얼댔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이렇게 빨리 이별할 줄은 몰랐습니다.
스님은…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언제나 곁에 계실거라 믿는 또 한 분의 아버지셨습니다.

아….. 어쩌면 좋은가요.
어리석게도 스님이 가시고서야 제게 스님이 얼마나 큰 버팀목이었는지 압니다.
병든 몸이라도 이 어지러운 사바세계에 좀 더 남아주시면 안되는 것이었습니까.. 언젠가 겪을 일이었지만 아직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가슴이 너무나 허합니다.
스님께선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것일 뿐이라셨지만 그 말씀.. 스님의 죽음 앞에서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떠나지 마세요. 우리를 남기고 혼자 떠나시는 것에 대한 원망… 받으세요.

그 날, 길상사에도 송광사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실감하고 싶지 않습니다.
조그만 TV로 편안한 모습으로 눈감으신 스님을 보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목이 메이면서도..
스님의 “그래요, 밥먹고 가요.”가 생각나 이 중생은 꾸역꾸역 배를 채웠습니다.
그동안 스님에게서 들은 우스개들을 떠올리면서 웃었습니다. 냉철한 겉모습 속에 감출길 없이 스며나던 인자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따뜻하고 재미있는 분이셨습니다.

스님.
살아서 작별인사 하지 못한 것이 사무칩니다.
스님의 그늘 아래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중의 한 명일 뿐이지만.. 저도 꼭 스님께… “만나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라는 작별인사를 하고싶었습니다. 스님과 눈을 마주하고.. 스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스님과의 만남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말할 수 있었던 류시화 시인이 너무도 부럽습니다.
큰스님….
제 삶과 겹치는 생을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것, 스님의 삶을 10여년이나 공유하였다는 것이 행복하고 고맙고 영광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스님.
다음 생에도 우리 곁에 와주세요.
이 허전한 마음.. 다른 모습으로라도 다시 오실 것을 희망으로 달래겠습니다. 스님이 주신 말씀 새기며 살아가겠습니다. 밥도 잘 먹겠습니다.
스님,
잊지 않을 것입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잘 가세요… 극락왕생 하십시오…



무소유 - 10점
법정스님 지음/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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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abriel

    불가에서는 깨달음을 얻어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것이 가장 큰 덕으로 생각하는데
    '다음 생에도 우리 곁에 와주세요.'라면 스님께서 다시 윤회의 굴레를 지시라는 말씀이신가요?

    2010/03/15 23:12 [ ADDR : EDIT/ DEL : REPLY ]
    • 이기적인 중생이라 그정도의 심정이란 말입니다.
      아프셔서 힘드셨을텐데 그래도 더 버텨주셨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불교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합니다. 법정스님이 '스님'이어서 좋아한게 아니고, 오히려 불교 얘기를 덜 하셔서 좋아했지요. 윤회에 대해서 좀더 알게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2010/03/16 00:17 [ ADDR : EDIT/ DEL ]
  2. 많은 아름다운 감성들을 남기고 가셨어여

    2010/03/16 00:57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너무나 많은것을요. florist님 말씀처럼..'감성' 또한 많이 남기셨네요.

      2010/03/16 18:03 [ ADDR : EDIT/ DEL ]
  3. ㅠㅜ

    공감합니다ㅠ 제 마음을 대신 표현해주셨네요;; 저도 정말 슬픕니다 ㅜ

    2010/03/16 10:51 [ ADDR : EDIT/ DEL : REPLY ]
  4.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기억 못하시겠지만 2주전쯤에 초대장 보내주셔서 열심히 글 올리고 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2010/03/21 21:01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정말 후딱도 만드셨네요! 모든 기능을 다 붙이셨는데 한 이틀 밤새셨을것 같아요! 모쪼록 잘 가꿔가시길 바랍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2010/03/23 09:24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