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2010/03/02 23:48


우리나라 영화를 무시했던 적이 분명히 있는데, 이유없이 그랬던건 아니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한국영화에서 당연히 대사로 사용되는 한국말을 나도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다보니 극중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들을 내가 평소에 말하는 우리말과 너무나 쉽게 비교해볼 수 있고, 그래서 특히 과한 문어체 대사들이 난무하는 한국말 영화는 정말이지 오글오글대서 봐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물론 다 그런게 아니고, 그것만이 기준이 되는것도 물론 아니고, 우리 영화에 그런 영화들이 많다는건데, 주로 진지한 수사물, 처절한 전쟁영화가 그렇다. (한때 엄청나게 유행했던 조폭코메디들은 대사 때문이 아니라 그 외 다양한 다른것들로 우스이 여겼던거고)

최근 드라마 아이리스도 거의 한번도 제대로 본적이 없다. 노력했지만 민망해서 볼수가 없었다. 일단 그렇게 인형같이 생긴 인간들이 정보요원이라는것부터에 감정이입율 제로이고, "아니 뭣이?"류의 비현실적인 대사들도 그냥 넘겨봐지지가 않아서다.
내러티브의 치밀함은 그 다음 문제이다. 일단 어색하고 웃기고 민망해서 쳐다봐줄 수가 없으니까.
(내가 영어가 익숙한 사람이라면 영어나라 영화에 대한 판단도 달라질 수 있겠지.물론)

어쩌다 드라마 얘기가 나왔는데, 영화에선 더하니깐 뭐.
말하자면 긴 얘기지만 아무튼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그런 이유들이 컸고, 하여간 내가 생각하기에 세련된 한국 영화가 기억에 남기 시작한건 정말로 그 역사가 짧다.
오히려 유현목 감독 시절의 60~70년대 영화에서 더 세련된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을 보면 다들 대사를 실생활에서 말하듯 하는 이들인것 같다.
공효진, 전도연, 송강호(<밀양>에서만), 아사노 타다노부... 이들이 그렇다.


잠시, 수년 전 아사노상의 방한 인터뷰 중, 이점에 대한 인상적인 언급 하나.

질문 :
여러 작품에서 굉장히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아사노 : 배우를 목표로 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연극을 하는 배우들은 인사말 조차도 과장된 연기를 펼친다. 나는 우리가 평소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배우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웃음) 그래서 더더욱 우리가 평소에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신경써서 연기한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찍었던 <포커스>란 영화가 출연작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래서! 연극은 봐도봐도 적응이 안돼서 좋아하기를 포기했다. 감정과잉의 오바 대사가 기본인 연극발성이 싫어서이고, 그래서 연극배우 출신 티가 남아있는 배우들도 불편하다.

아무튼,
내게 거의 충격이었던, 정말로 마음에 드는, 기억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한국영화를 초스피드로 생각해보니 일곱 작품이 떠올라 기록해둔다. (순서는 정할 수 없다.)



수취인 불명

김기덕 /  양동근, 조재현, 방은진

한마디로,
정말 최고로 슬픈 영화.로 남아있다.
기덕감독님의 거의 초기작이니 벌써 세월이 꽤 흘렀지만
슬픔이란게 뭘 말하는지 정말로 알 수 있을것 같았던 영화로 남아있다.

거의...지금도...
포스터만 봐도 눈물이 날 지경이다.

양동근은....
이 영화에 양동근이 아니었다면
데뷔작부터 괴상한 영화 몇개 만든 또라이 감독의 또 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게 다였을지도 모른다.

후작들에서 실망을 했어도
김기덕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작품. 

 


 


마더

봉준호 / 김혜자, 원빈

그냥 뭐 봉감독이 천재라는 생각과
국민엄마이긴 하지만 드라마에선 가끔 청승스런 연기가 불편하기도 했던 김혜자가 딱 알맞게 처절한 연기를 보여준.

극장을 나서면서 계속 생각하게 하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계속 더 세련되게 어려운 내러티브와,
그러면서도 온갖 상업적인 기술을 다 기가막히게 구사하는 내공이 느껴진.

내게도 엄마가 있어서 이 얼마나 다행인가!
라는 거룩한 깨달음을 준 영화.









 
올드보이

박찬욱 /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


(흠, 나의 고어취향을 감출수가 없군ㅋ)
영화에 대해선 더 말할 필요도 없겠고
박찬욱 감독이 칸에서 타란티노에 의해 이름이 불렸을때
진짜 백프로 자랑스럽고 뿌듯하고 받아 마땅하다 생각했다.
타란티노가 올드보이 추종자가 됨이 당연하게 느껴지고.

파이란과 함께 최민식 연기 좋다고 진짜로 생각한 딱 두개의 작품. (최민식도 연극배우 출신이라 그런 오바스러운 대사법이 남아있어 불편했던 적이 많다)

하악 구조 변경후의 특징없는 강혜정을 볼때마다
미도를 안타깝게 떠올려 그리워하게되는 작품.





 



밀양

이창동 / 전도연, 송강호

이 영화가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감상들을
정말로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

전도연과 송강호 모두 최고로 자연스러운 연기.

무엇보다
우리나라 버전 기독교를 경멸하는 사람으로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에 관한 우스운 문제를
스토리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놓고
아주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짚어준것이
너무너무나 좋았다.

물론
이창동 감독은 기독교를 비하한것이 아니라고 당당히 말했다.ㅎㅎㅎ 감독님 멋져.





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 / 송강호, 배두나, 신하균

공동경비구역JSA를 보기전에
이걸 먼저봤으니 충격이 오죽했겠나.
그것도, 새벽 4시쯤에 첫차 기다리면서 허름한 비디오방에서 봤으니;;;

이 감독 누구냐! 싶은 생각 뿐이었던
그야말로 충격 자체였던 작품.

가해자도 불쌍하고 피해자도 불쌍하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돼버린,
양쪽다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관객을 몰아넣는 잔혹한 감독.

그로테스크함의 미학!!! 사랑해요~








 
멋진 하루

이윤기 / 전도연, 하정우


위의 영화들만큼 맘에 드는것은 아니지만.
큰 기대 없이 봤다가
완전히 동화됐던 작품.
그로테스크 고어만 좋아하는것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고ㅎ

떼인돈 못받아도 좋은 <멋진 하루>
http://hedwig.kr/196

참, 하정우는
<두번째 사랑>이 참으로 좋았다.
이후 큰영화들을 너무 많이 하고 있어
생각보다 빨리 싫증났다.








안개마을

임권택 / 정윤희, 안성기

이 영화는,
"제대로 보고싶어 죽겠는"영화이다.

이문열 단편소설 <익명의 섬> 원작인데
리모콘질 하다가 잠깐 걸린 케이블 채널에서
마지막 장면을 잠깐 본적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어찌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지
마지막 장면 안성기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이
며칠을 갔을 정도다.

다행히, 한국 영상 자료원에 필름이 있고
마침 올해 몇달에 걸쳐
'한국영화100선'으로 꼽힌 작품들을 몇개씩 묶어 상영하는 계획이 잡혔고 안개마을이 포함되어있다.

이렇게..
조만간 필름으로 보길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다.
(개봉 포스터 카피는 정말 더할나위 없이 웃기군!)
이문열이 타락한 지식인이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그의 '허구'를 그리는 글솜씨 하나는 탁월하니까.


+ KOFA의 한국영화 100선 릴레이
http://www.koreafilm.or.kr/cinema/program/category_view.asp?g_seq=74&p_seq=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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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왓~ 하나같이 엄청 좋은 작품들이군요. 영화 보시는 눈이 탐 나는데요~ ㅋ
    저도 한국영화를 최근에 들어서야 보기 시작했는데...음 민망 같은 것보다 우리나라 영화가 확실히 2000년대에 들어서고 나서야 발전했다는 느낌이 많이 드네요. 그걸 이제야 알아채고 밀린 영화들을 보고 있는 저는 또 뭔지 ㅋ

    2010/03/03 00:02 [ ADDR : EDIT/ DEL : REPLY ]
    • 아이고 고맙습니다.ㅋ
      밀린 영화들 보시다가 숨은 보석 찾으시거든 제게도 좀 알려주세요^^ 저도 2000년대 들어와서야 보고 있거든요.

      2010/03/03 00:18 [ ADDR : EDIT/ DEL ]
  2. 김기덕 참 아쉬운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감성을 지녔음에도 결국 성 집작층적인 증상까지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사마리아까지는 괜찮았는데 말입니다. '활'인가 부터는 도저히 참고는 못봐주겠더군요. ^_^; 글 잘보고 갑니다.

    2010/03/03 00:12 [ ADDR : EDIT/ DEL : REPLY ]
    • 네,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수취인불명 전후의 작품들때문에 이놈의 정이 들어서ㅋㅋ 내칠수가 없네요.쩝.요즘은 뭐하는지. 저도 활까지 보곤 더이상 챙겨보질 않게됐네요. 그래도 띄엄띄엄 안부가 궁금합니다.^^

      2010/03/03 00:21 [ ADDR : EDIT/ DEL ]
  3. 헉.. 뭐죠..;;
    제대로 본 영화가 올드보이 하나밖에 없네요. @_@ 제가 한국 영화를 너무 안 봤군요..;;

    2010/03/03 09:22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저도 뭐 비슷해요ㅎ 지금부터 보시면 되겠어요, 저도 그럴라고요^^

      2010/03/03 11:18 [ ADDR : EDIT/ DEL ]
  4. 레블

    수취인불명은 못봤지만 양동근의 연기력에 대해선 아주 아주 불신을 가지고 있어서.. 양동근/설경구 등등은, 지나치게 오바하는(위에 이야기한것처럼 연극을 보는듯한) 연기때문에 짜증나서 안보고 있었는데..
    저 수위인 불명은 볼만한가부다.. 워낙 여러사람이 추천하니..

    수취인불명과 안개마을을 빼곤 나랑 취향이 비슷하구나..

    2010/03/03 12:53 [ ADDR : EDIT/ DEL : REPLY ]
    • 같은 이유로 설경구를 나도 안좋아하는데..양동근을 그들하고 묶어본적은 없네요.
      난 양동근이 멀티 엔터테이너로서 모든 영역에서 훌륭한 수준을 갖춘 거의 유일한 연예인이라 생각하는데, 이렇게 양동근을 좀 각별히 여기는데는 약간의 다른 이유가 있어서(내가 많이 측은히 여기는 지인과 많이 닮은 외모라는 이유), 연기력만 따로 판단할수가 없는ㅋ
      음,, 양동근 연기는 되게 자연스러운 쪽 아닌가요? 아닌가? 아 객관적인 판단 불가능!
      그럼, 수취인불명 보시고 다시 얘기합시다~^^

      2010/03/03 14:20 [ ADDR : EDIT/ DEL ]
    • 비밀댓글입니다

      2010/03/03 15:20 [ ADDR : EDIT/ DEL ]
    • 형분줄 안다!ㅋㅋㅋ
      무슨 강력계형사 그거는 대충만 봤지만 그거는 쒯임.인정!ㅋㅋㅋ 영화마다 다 다른가? 하여간 다시 얘기해요!ㅎㅎ

      2010/03/03 15:50 [ ADDR : EDIT/ DEL ]
  5. 안개마을

    아.. 어렴풋이 TV에서 안개마을 본 게 기억나네요.
    그 때문에 이문열의 원작도 읽어보게 되었는데...
    링크해주신 한국영화 100선에서 본 것 중에 좋았던 게 있네요..
    별들의 고향,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칠수와 만수, 파업전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개같은 날의 오후, 축제 등입니다.
    좋은 정보 얻었습니다.
    그런데.. 은근히 불편한 영화를 좋아하시는 것 같은...

    2010/03/03 22:12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힌트 고맙습니다. 덕분에 난쏘공,칠수와 만수,파업전야,축제..요것도 이번 기회에 안개마을과 함께 좀 챙겨보고싶어 졌어요.^^
      불편한 영화...네..쩝..공교롭게도 추려내고 보니 그러네요. 영화 전체로 봐서는 특히 그렇진 않은것 같은데 우리영화는 유독ㅋㅋ
      사람 양심을 건드리면서 불편하게 하는 영화에 그 의도대로 불편해 하면서도 그걸 좀 즐기는듯 해요^^

      2010/03/03 22:39 [ ADDR : EDIT/ DEL ]